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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보경 시인 / 뒷덜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0.

한보경 시인 / 뒷덜미

 

 

세상의 모든 뒷덜미들은

제각각 기울어진 각도를 가지고 있다

 

나의 각도는

늘 전전긍긍이고

 

깃털에 싸인 새의 뒷덜미는

촘촘하게 박힌 슬픔의 엇각이 맞물고 있다

 

찬밥을 삼키는 뒷덜미에서

밥풀처럼 엉겨 붙은 외로움이 끈끈한 각도를 기운다

 

끈끈해진 뒷덜미를 들키지 않기 위해

몰래 빠져나간 기울기의 정체는 모른 척한다

 

누군가의 뒷덜미를 쓰다듬고

누군가의 뒷덜미를 후리고

누군가의 뒷덜미를 닦아주던, 낡고

허름한 타월처럼

 

뒷덜미의 유전자 속에는

태생의 쓸쓸함 같은 것이 푸른곰팡이처럼 자란다

 

뒷덜미를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끝내 제 뒷덜미를 볼 수 없다

 

웃고 있는

뒷덜미가 울먹울먹하다

 

 


 

 

한보경 시인 / 허공

 

 

아주 사소한 틈으로

틈을 뭉개려고

틈나는 대로 틈과 틈 사이에 낀

보이지 않는 틈을

 

들추고 후비고 파내었다

사소함은 자주 허기가 져서

틈이란 틈은 죽도록 뜯어 먹고 살았다

사소한 틈은

좀 더 사소한 틈들을 파먹고 더 사소하게 틈이 되어간다

지극히 사소하여

메울 수 없이 커다란 허공이 되어간다

 

 


 

한보경 시인

1959년 부산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대학원 졸업. 2009년 《불교문예》를 통해 등단. 웹 월간시 <젊은시인들> 편집장. 시집으로 『여기가 거기였을 때』(지혜사랑, 2013), 『덤, 덤』이 있음. 부산작가상 수상. 현재 웹 월간시 {젊은 시인들}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