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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5.

[말씀묵상]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고 있습니까?

제1독서 아모 6,1ㄱㄴ.4-7 / 제2독서 1티모 6,11ㄱㄷ-16

복음 루카 16,19-31

가톨릭신문 2022-09-25 [제3311호, 19면]

 

 

약자의 고통에 무관심한 세태

관심 갖고 도움의 손길 내밀며

주님의 뜻대로 그들의 편에 서길

 

 

 

레안드로 바사노 ‘부자와 라자로’. (1595년)

 

 

시골 본당에 있을 때 공소를 지어야 했습니다. 공소 신자들의 힘만으로는 건축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모금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모금을 나간 것은 아니고, 신자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신자들은 본인들이 준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팔 것들을 마련하셨습니다. 섬에서 나오는 바지락이나 굴이나 김이나 물고기 말린 것들, 그리고 농산물 가공한 것들을 준비해서 나가셨습니다. 잘 팔렸을까요? 안 팔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물건 앞에서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많은데, 사지는 않고 그냥 지나가셨습니다.

 

그런데 가져온 것들 중에는 생물들이라 판매가 안 되면 가져가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청을 높여서 팔아달라고 신자들에게 ‘강매’하기 시작했는데요. 한 번은 마지막 남은 굴을 다 사 주는 신자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신자분에게 “왜 남은 물건들을 다 사 주느냐? 부담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황창연 신부님이 강의하신 적이 있어요. 열악한 시골 본당에서 물건 팔러 본당에 왔는데, 그 앞에서 이거를 살까 말까 고민하지 마라. 그러면 나중에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가게 됐을 때 하느님께서도 얘를 데려갈까 말까 고민하신다고요.” 그러면서 남은 물건을 다 사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본당에서 모금하고 물건을 팔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물건이 남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잠언 21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 오늘 복음에 보면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부르짖을 때 응답을 받지 못하는데요. 그 이유도 가난한 라자로의 소리 없는 외침에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서인지도 모릅니다.

 

“형제 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 하고 있습니까?”

 

예전에 공지영씨의 「의자놀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 과정에서의 불의함과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절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요. 사회는 그 일에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교회의에서 그 해에 만든 인권주일 관련 동영상을 보면서, 반성과 함께 감동이 느껴졌었습니다.

 

동영상 중간 너머에 보면, 신부님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또 철탑 앞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시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그 뒤에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신부님, 수녀님, 모든 가톨릭 가족들이 함께해 줬던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의지가 돼 준 언덕이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매일 미사 덕분에 우리가 희망을 갖고, 희망으로 싸울 수 있었고, 희망이 뭔지, 가슴에 충만함이 뭔지, 매일 미사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온 한 문장을 보고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글귀가 이어졌습니다. ‘대한문 매일 미사가 시작된 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 행렬이 기적처럼 멈추었다.’

 

그 일에 대해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은 신부님, 수녀님들이 매일 분향소에 와서 꽃을 꽂아 주셨던 것인데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죽는 것은 결국 세상이 내 고통을 몰라준다는 것인데, ‘우리가 혼자가 아니구나. 우리의 고통을 세상이 알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시켜준 일이 한국교회의 대한문 앞 시국미사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다른 여러 신자분들이 해고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계속 함께해 주었고, 그 일이 정말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냈는데요. 그 모습이 마태오복음 7장 25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하느님의 뜻대로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했던 분들이 있었기에, 더 이상 해고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무너지는 일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나오는데요. 그 말씀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형제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할지를, 어떻게 연민을 경험해야 할지를 잊었습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서 슬퍼하는 능력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내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일지, 또 그들에게 작은 관심을 가지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