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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정옥 시인 / lettering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29.

박정옥 시인 / lettering

 

 

홍대입구역 8번 출구 5분 거리

그녀가 이곳으로 강물처럼 흘러왔다

 

이국의 언어는 현기증의 기슭에 닿았다

 

여자의 한 쪽 어깨가 필기체로 휘어져 번진다

휘청이는 몸을 가누기에 좋은

여행의 기억을 누른 거니

 

티셔츠처럼 나눠 입을 수 없는

네 목덜미,

포르투의 저녁이 만져지는

꿈틀거리는 목 언저리에

피어나는 한 송이 스위치

숨을 들이킬 때마다 도루강의 水泂이 덜컥댄다

 

피할 수 없는 생의 요철마다

니들로 무늬를 짜서

발효되는 고통을 봉한다

애칭만큼 닳고 통증만큼 닮은

창문을 만들까 생각하면서

 

등록되지 않은 결심이 까맣게 번진다

 

-시집 『lettering』, 도서출판 지혜

 

 


 

 

박정옥 시인 / 담쟁이를 넘을 수 없나

 

 

요즘 부쩍 돌담이 시끄럽다

안팎의 위치에 따라

남북으로 대치되는 돌담

 

조금씩 허물리는 담을 사이에 두고

말이 자라나는 겹겹의 입술이

돌담 사이 쑤셔 박혀 있다

 

쑤셔 박힌 말은 한줌 빗물에도

스프링처럼 튕겨나간다

 

저것은 풍자를 위한 계절의 과녁

푸름의 중심을 겨냥하여

곧이곧대로 넘어가려는 것과

허공에 창문을 가늠하는 것과

서로의 세계를 누르는 압력과

바람의 수평과

 

그러나 할 말이 많은

저 많은 청개구리들

파랗게 질리도록

돌담을 갈구어

비가 오면

정말

어쩌려고!

 

-시집 『lettering』, 도서출판 지혜

 

 


 

박정옥 시인

경남 거제 출생. 방송대 국어국문과 졸업.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석사 졸업. 2011년 《애지》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거대한 울음』 『lettering』이 있음. 변방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