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분홍 시인 / 스프링클러 잔디밭의 잡초는 스팸메일, 지워도 지워도 다시 생겨난다 역대급 폭염은 그치지 않았고 사건을 목격한 벤치가 침묵을 강요한다 연못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부레옥잠은 의혹만 키운다 분수는 구름에게 무지개일까 소낙비일까 낯선 사람이 분사하는 물줄기를 전지가위로 자르는 상상을 한다 돌돌 말려 있는 호스는 혓바닥을 내밀고 먹잇감을 유혹하는 뱀 같다 거웃 없는 징그러운 다리는 포식자의 자세 누군가 푸우! 하고 거친 숨을 내뱉는다 비명을 터뜨리는 순간 흩뿌려지는 물줄기는 더 이상 물줄기가 아니다 뉴스의 중심축에 서는 것은 두려운 일 그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더 두려운 일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계에서 궤도를 떠난 무지개는 어떤 먹구름을 배달하러 다니는 걸까 둘레 없는 스프링클러에서 회오리바람이 분다
김분홍 시인 / 볼트와 너트
너와 나는 깊은 사이라지 죽을 때에야 헤어지는 깊은 사이라지
볼트, 볼트, 볼트 제발 나를 끌어안아 줘
너트, 너트, 너트 제발 나를 놓아줘
너의 입속엔 뱀이 살고 있고 나의 머릿속엔 젊은 곰이 살고 있지만 너와 나는 한 나무에서 먹고 자는 사이라서
에로틱한 눈빛으로
볼트, 볼트, 볼트 좀, 더, 난폭하게 끌어안아 줘
너트, 너트, 너트 이제, 그만 놓아줘
비록 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우린 서로를 갈아 끼울 수 있는 사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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