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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인숙 시인 / 내 삶의 예쁜 종아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4.

황인숙 시인 / 내 삶의 예쁜 종아리

 

 

오르막길이

배가 더 나오고

무릎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지름길은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

 

 


 

 

황인숙 시인 /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차용.

 

 


 

황인숙(黃仁淑) 시인

1958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리스본行 야간열차』가 있음. 동서문학상(1999)과 김수영문학상(2004)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