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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현미 시인 / 아무런 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5.

문현미 시인 / 아무런 날

 

 

새가 창문에 똥을 찍ㅡ 싸고 날아가고

어디선가 청바람이 설렁설렁 불어오고

햇빛, 그 환한 길 따라 꽃물결이 일렁이고

누군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부신 포옹을 하고

나는 화장실에서 먼 훗날을 경쾌한 속도로 스케치하고

하루치 입속의 행복이 노을빛 완경으로 익어가고

 

저녁에는 눈꺼플이 쉬이 나른해지는

아이처럼 두 손 꼬옥 붙들고 꿈나라에 들고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이, 얼룩도 없이

 

 


 

 

문현미 시인 / 봄소식

 

 

바닥이 환히 드러나 보이는 호수에

물닭 몇 마리 유유히 물길을 내고 있다

 

날개 밑이 슬그머니 부풀어 올라

물 낯바닥이 자꾸만 간지럽다

 

참 파릇한 봄날 아침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편지 한 통

 

 


 

문현미 시인

1957년 부산 출생. 부산대 국어교육과 졸업. 독일 아헨대학교(RWTH) 문학박사 취득. 1998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기다림은 얼굴이 없다』 『칼 또는 꽃』 『수직으로 내리는 비는 둥글다』 『가산리 희망발전소로 오세요』 『아버지의 만물상 트럭』 『그날이 멀지 않다』 『사랑이 돌아오는 시간』 등. 2008년 박인환문학상, 2011년 크리스천문학상, 2012년 시외시학 작품상, 2014년 한국기독시문학상 수상. 독일 본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역임. 현재 백석대학교 및 백석문화대학교 도서관장, 山史현대시100년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