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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관묵 시인 / 구절초 앞에서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5.

이관묵 시인 / 구절초 앞에서는

 

 

구절초 피었다고

구절초 피었다고

금산錦山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더군

구절초 앞에

널찍한 오후 펼쳐놓고 둘러앉은

골안개 자욱한 일교차들

정문正門없는 안색들

마음이 마음을 건드려 빛을 발하듯

구절초 앞에서는

구절초 앞에서는

왜 이별을 만든 이유가 말해지는지

왜 모든 얼굴들이 이해되는지

왜 사람이 초기화되는지

최적화되는지

마음 줄줄 엎질러진 얼룩 같은 꽃

혹은 그 후문後門 같은 꽃

 

 


 

 

이관묵 시인 / 저녁 강

 

 

강가에 무릎 세우고 앉아

흘러가는 강물 무연히 바라본다

사는 일이 모두

흐름에 물들다 가는 일이라고

한 여울이 다른 여울을 세차게 껴안는다

흐름의 수심 깊이 가라앉은 무겁고 느린 生이 있지

다 왔다, 다 왔다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

그리움으로 읽히기도 하고

쓸쓸함으로도 읽히는 세상을 빌려

띄엄띄엄 달맞이꽃이 피었다 지는구나

내가 끌고 다닌 길이여

어느 깊은 그늘에 이르러 미치게 뒤척이며

내 傷한 노래와

노래 곁에서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

우울한 저녁 하늘을

너는 또 어느 기억 속으로 이끄는 것이냐

 

-시집 ‘가랑잎 경(經)’, 시선사 2007

 

 


 

이관묵 시인

1947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동백에 투숙하다』, 『시간의 사육』, 『수몰지구』, 『변형의 바람』, 『저녁비를 만나거든』, 『가랑잎 경』 『반지하』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