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묵 시인 / 구절초 앞에서는
구절초 피었다고 구절초 피었다고 금산錦山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더군 구절초 앞에 널찍한 오후 펼쳐놓고 둘러앉은 골안개 자욱한 일교차들 정문正門없는 안색들 마음이 마음을 건드려 빛을 발하듯 구절초 앞에서는 구절초 앞에서는 왜 이별을 만든 이유가 말해지는지 왜 모든 얼굴들이 이해되는지 왜 사람이 초기화되는지 최적화되는지 마음 줄줄 엎질러진 얼룩 같은 꽃 혹은 그 후문後門 같은 꽃
이관묵 시인 / 저녁 강
강가에 무릎 세우고 앉아 흘러가는 강물 무연히 바라본다 사는 일이 모두 흐름에 물들다 가는 일이라고 한 여울이 다른 여울을 세차게 껴안는다 흐름의 수심 깊이 가라앉은 무겁고 느린 生이 있지 다 왔다, 다 왔다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 그리움으로 읽히기도 하고 쓸쓸함으로도 읽히는 세상을 빌려 띄엄띄엄 달맞이꽃이 피었다 지는구나 내가 끌고 다닌 길이여 어느 깊은 그늘에 이르러 미치게 뒤척이며 내 傷한 노래와 노래 곁에서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 우울한 저녁 하늘을 너는 또 어느 기억 속으로 이끄는 것이냐
-시집 ‘가랑잎 경(經)’, 시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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