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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희강 시인 / 인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5.

최희강 시인 / 인연

 

 

겨울을 이겨내

지금

코를 만지네

 

밤은 푸르네

그녀는 예뻤다 이팝나무의 사랑꽃이 피우도록

하얀 밤에 혼자서 물을 마시네

남자는 바하리야 오아시스 주변의 백사막에 있네

누군가 피워놓은 화톳불에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사막의 밤에

바다가 솟구쳐 형성된 지형은 새가 되어 떠날 채비를 하네

남자는 강하네 사막 가운데

조용히 자신의 입술을 축이네

 

어느 시인이 사랑한 이름

어느 시인이 기억한 이름

기다리면 될까요 어떻게 만나는지요 오직 당신만이 나의 입술에 키스를 하네요

하얀 석고 조각으로 누워 있는 강이라는 이름

사랑을 내려놓고 사랑을 마주하네

하얀밥 가득 입에 넣고

사랑은 가만히 있어도 내게로 오는 바람

불어라 낙타가 걷는 동안 당신의 눈동자는 살아있네

그 입술을 사랑하네

 

겨울을 이겨내

지금

그 얼굴을 만지네

 

사막의 문구

마지막 문장인 당신

 

-《시와경계》(2021년 겨울호 )

 

 


 

 

최희강 시인 / 욕실에서의 또 하루가 지나간다

 

 

11시 밤과 낮의 물은 평화로워 새벽을 맞이할 때

오늘은 한 명에게 선물하는 날 생일 즐거워

기차 안에서 본 문구 ‘분만 24시’

벚꽃 길 지나 어린 뻐꾸기 날개 그리워

애도하는 하늘 밝아온다

 

나의 커다란 모던 보이,

보이는 거울을 좋아해 구름의 헛기침이 잦아드는 밤

매일 욕실에서의 익숙한 물을 생각해

배꼽이 부풀어 오르는 밤

봄 벚꽃이 만개해 연분홍 비누거품 놀이

휘날리더라

피어날레

 

물결은 잔잔하며 고요하고

식은땀은 체온을 잃어버려 감쪽같이 휘말리더라

공평한 어둠은 불안을 뒤집고

밝은 등불은 마음을 차츰 안정시키더라

 

무감각해진 불안

무의미한 안경

무기력한 손

새봄 기다리는 깡마른 희망들

 

불우의 풍경은 없고 불운의 시대는 피투성이다

욕실 바닥으로 흐르는 물과 피

어떤 피는 상처를 내놓고 금방 굳어간다

어차피 똑같은 피

 

 


 

최희강 시인

1971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 2006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키스의 잔액』(실천, 202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