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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유미 시인 / 새의 감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6.

김유미 시인 / 새의 감정

 

 

할머니와 둘이 사는 것은 슬펐다

내 속에 누군가 버린 새가 살고 있다

숨을 쉬기 위해 영화관엘 갔고

가칭 투명이라고 했고

그날의 새는 불투명해서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모르는 눈치였지만

팝콘을 주고받은 아르바이트 언니는 눈동자가 그렇게 우울해도 되겠어? 라며

흰 구름을 권유했다

 

영화를 뒤집어 새를 불러냈다

허공의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얻은 새에게 흰 구름을 떠먹이는데

노랗게 물들인 내 머리카락이 자랐다

 

주머니 속 내 영혼을 만지작거리면

캐러멜처럼 끈적이는 손바닥

 

할머니 곁에서 꿈이라고 애교 떨고

화분 곁에서 예쁘지 예쁘지 속삭이다가

내 곁에서 거품이라고 풀이 죽기도 했다

 

벼랑을 다른 이름으로 바꾼다면 굳어 버린 날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할머니

 

안 들리는 척 창밖으로 새를 날려 보는데

돌아와 옆구리를 당겨

위험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시집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

 

 


 

 

김유미 시인 / 후렴

 

 

할머니는 자장가를 부르다 말고

쳐 죽일 년 집을 나가?

죽은 네 아버지만 불쌍하구나

 

가라앉은 바닥을 건져 내기 시작했다

골목이 울다가 잠들 때까지

 

죽은 새의 부리를 물어뜯는 것처럼

썩을 년 집을 나가?

 

계단은 밤새 달을 오르내렸다

달의 한가운데 무릎을 심어 놓고 돌아왔다

 

누워서도 꼿꼿하게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불러도 끝나지 않을 노래

무릎은 쑥쑥 자라고

 

떠도는 계단들이 얼굴 안으로 돌아오는 시간

 

혼자만 아는 리듬을 듣는다

멀리 가도 그 방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끊어지지 않았다

 

 


 

김유미 시인

전남 신안에서 출생. 2014년 《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 시집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