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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효연 시인 / 꿈꾸는 문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6.

 

김효연 시인 / 꿈꾸는 문신

 

 

일찍 담배를 나눠 빨며 주먹부터 키운 그 녀석

한자도 기타도 아닌 용 한 마리 속성으로 새겼는데

불법 시술인지 사용 부족 탓인지

목덜미 집어넣고 꼬리 숨기고 다니는 꼬락서니

조폭 아니면 양아치라도 되어야지

어린 딸과 눈 멀어가는 조모 곁에서

치매 노인에게 멱살 잡혀가며 두 손 포개는

용의 계보를 생각한다며 그럴 수 없어

속옷을 뒤져서라도 꼬투리 털어보려는

이웃의 호기심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더욱

매연 뿜는 트럭에 만물 싣고 담벼락에 전 펴는

잡동사니 그 속엔

투박스런 식칼부터 과도, 연필 깎는 칼까지

검지로 칼날의 먼지를 스윽 닦아보는데

권태롭던 시간이 꿈틀,

냄비를 고르던 여자가 움찔,

앉은뱅이 거울이 집요하게

사내의 티셔츠 앞 단추를 풀려고 덤비는

언젠가 날아오를 그날

지금 문신은 꿈꾸는 중

 

 


 

 

김효연 시인 / 폭염은 모른다

 

 

  살 거도 아이맨서 와 자꾸 물어 쌌노

  하기사 살 사람 거트면 이래 묻지도 안것제

  씰데없이 이 염천에 댕기맹서

  보리밥 한 그릇 묵고 일일이 답할라카이

  내사 마 입에서 당내가 나거마

 

  얼굴이 벌겋게 익은 노파 입이

  좌판에 늘어진 갈치보다

  더 날카로워진다

 

  그럼 가격을 붙여 놓지예

 

  글을 알아야 씨제

  지나내나 씨지도 익지도 몬하는데

  그람 또 아는 사람한테 실은 소리 해야 안하나

 

  옆 좌판의 노파는

  어린 갈치 대가리를 한꺼번에 자르며

  그중 나은 건 밀가루 묻혀 굽고

  나머진 졸이라며 칼 잡은 손이

  연신 이마 땀을 훔친다

 

  혀가 녹아내려도

  두 할머니는 폭염을 모른다

  절대 알 수가 없다

 

  변두리 시장 노점상 옆으로

  마을버스 혀를 빼고 올라온다

 

―시집 『무서운 이순 씨』 (시와반시, 2019)

 

 


 

김효연 시인

경남 진주에서 출생. (필명 김문주). 2006년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으로 『구름의 진보적 성향』 『무서운 이순 씨』가 있음. 2016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2019년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부산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