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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가경 시인 / 정글 그리고 짐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7.

박가경 시인 / 정글 그리고 짐

 

 

가지와 줄기는 더 어두운 곳에서 빛났다

나는 몸속에 비장한 단어들을 가득 담고서 매일 그곳에 갔다

하나씩 튀어나온 단어들이 혓바닥 안에서 다시 삼켜져야만

맹수들의 무서운 얼굴을 만나지 않았다

비굴은 어리숙함 속에서 가시를 갖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 뇌는 벌써 싱싱해서

아직 알맞게 영글지 않아서

내 입속의 발칙함을 꼭꼭 닫아 버려서

성장판을 온통 바닥을 향해 열어 놓는다

보이지 않는 적을 찌르며 한 칸 한 칸 올라간다

철창 속에 갇힌 한 마리의 저항처럼

꼭대기에 올라가 앉는다

그 황홀을 들키지 않으려고 소리치지 않는다

모래바람이 가벼운 방향을 택해 날아가지 않았다면

내 스커트 안쪽에서 여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걸 잊을 뻔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아니 들키고 싶은

솜털들이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둠은 미끄러지지도 않고 단숨에 올라온다

익숙해져 가는 막말을 밀어내는데 다리와 다리 사이에서

우주의 문이 열리고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혼자서 처음 맞이하는 여자가 붉게 쏟아졌다

내가 돌아가야만 마침내 불이 켜지는 창문이 희미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나는 나를 숨기고 야생을 숨기고

혼자만의 집으로 들어간다

 

 


 

박가경 시인

1969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2015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리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계절이 살고 있다』(천년의시작, 2021)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