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봉 시인 / 해바라기
새벽 아침 동쪽에서 솟아나 한낮 하늘 위쪽을 쳐다보며
저녁 무렵 서편으로 기우는 해를 따라 한길로 생활하던
해바라기 씨앗 같은 사람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없어
일편단심 까맣게 타오를 때 더위를 극복하는 끈기로
커다란 해 시계를 매단 채 꼿꼿이 서있는 해님의 꽃처럼
가슴으로 정을 주고받으며 의지를 불태우던 의리의 사람
모두가 바람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애를 타지만
그대만은 하나의 뜻을 세우고 어두운 세상 불 밝히고 있다
유희봉 시인 / 귤나무
한라산 중산 간 외딴 마을 이름 없는 풀꽃 송이처럼 쉬어도 못 넘는 힘든 길을 지나 새싹을 틔우다 꽃을 피우며
먼바다 풍랑에 부서진 배 불길한 소식 걱정이라지만 작은 꿈을 키우는 귤나무같이 묵묵히 자기 터전을 지키고
행복의 닻을 내리는 다정한 그 부부와 동서를 만날 때마다 나도 그들 같이 슬픔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몸을 추수하던 지난날 눈물로 일거논 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기쁨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수입과일이 이렇게 밀려와 아픔을 함께 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열매를 잃어버린 껍질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유희봉 시인 / 고란초
땅 끝을 모르는 가는 뿌리 꿈을 쌓는 바위 틈 낭떠러지 방향을 잃어 본적 없는 심마니도 이처럼 살아보지 않았으리
홀씨 하나 잎을 꽃처럼 피우며 조롱 바가지 위에 뜨는 잎 술 가슴 적시는 약수터 물 한 모금 빛나는 별빛 눈동자를 따라
말 없는 대화 속에 늘 푸르게 미움의 발길로부터 빠져나와 변함 없이 굽어보는 고란초처럼 찬바람 눈물 속 좌절하지 않고
허망한 이름의 매듭을 풀어 영원히 잊지 못할 좋은 만남 형상으로 아로새겨진 한 줄의 詩 무한으로 내 닫는 첫 발자국
유일한 생물이 된 듯 돌아 온 철새들이 내려앉은 백마강 줄기같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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