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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희봉 시인 / 해바라기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

유희봉 시인 / 해바라기

 

 

새벽 아침 동쪽에서 솟아나

한낮 하늘 위쪽을 쳐다보며

 

저녁 무렵 서편으로 기우는

해를 따라 한길로 생활하던

 

해바라기 씨앗 같은 사람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없어

 

일편단심 까맣게 타오를 때

더위를 극복하는 끈기로

 

커다란 해 시계를 매단 채

꼿꼿이 서있는 해님의 꽃처럼

 

가슴으로 정을 주고받으며

의지를 불태우던 의리의 사람

 

모두가 바람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애를 타지만

 

그대만은 하나의 뜻을 세우고

어두운 세상 불 밝히고 있다

 

 


 

 

유희봉 시인 / 귤나무

 

 

한라산 중산 간 외딴 마을

이름 없는 풀꽃 송이처럼

쉬어도 못 넘는 힘든 길을 지나

새싹을 틔우다 꽃을 피우며

 

먼바다 풍랑에 부서진 배

불길한 소식 걱정이라지만

작은 꿈을 키우는 귤나무같이

묵묵히 자기 터전을 지키고

 

행복의 닻을 내리는 다정한

그 부부와 동서를 만날 때마다

나도 그들 같이 슬픔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몸을 추수하던

지난날 눈물로 일거논 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기쁨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수입과일이 이렇게 밀려와

아픔을 함께 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열매를 잃어버린

껍질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유희봉 시인 / 고란초

 

 

땅 끝을 모르는 가는 뿌리

꿈을 쌓는 바위 틈 낭떠러지

방향을 잃어 본적 없는 심마니도

이처럼 살아보지 않았으리

 

홀씨 하나 잎을 꽃처럼 피우며

조롱 바가지 위에 뜨는 잎 술

가슴 적시는 약수터 물 한 모금

빛나는 별빛 눈동자를 따라

 

말 없는 대화 속에 늘 푸르게

미움의 발길로부터 빠져나와

변함 없이 굽어보는 고란초처럼

찬바람 눈물 속 좌절하지 않고

 

허망한 이름의 매듭을 풀어

영원히 잊지 못할 좋은 만남

형상으로 아로새겨진 한 줄의 詩

무한으로 내 닫는 첫 발자국

 

유일한 생물이 된 듯 돌아 온

철새들이 내려앉은 백마강 줄기같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고 싶다

 

 


 

유희봉(庾喜鳳) 시인

1948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 경영학 박사. 199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여명의 내일』 『녹슨 안경을 닦으며』 『작은 초가집 주인이 되고 싶어』 『유황불』 『꽃처럼 나무처럼 살며 사랑하며』 등과 산문집 『행복한 샘물』, 시 창작집 『시를 써야 미래가 산다』가 있음. 국무총리상, 대통령표창, 녹조근정훈장, 예술총연합회상, 국제교류문학상 수상. 현재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산업안전보건교육원 겸임교수, 수원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