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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인채 시인 / 대들보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

류인채 시인 / 대들보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온갖 풍상을 함께 한 낡은 집 한 채

구십 년째 버티고 있는 대들보가 무너져 칡넝쿨에 덮일 것만 같아요

허리협착증과 무릎 관절염과 근육파열로

엉덩이와 다리에 바위를 매단 것 같아

열 번 스무 번 마른 몸을 비틀다가 겨우 일어나는 어머니

팔에도 쇳덩이를 얹은 것 같아 일상이 고통입니다

자식 여섯 먹여 살린 젖가슴은 배꼽까지 늘어졌고

짓무른 눈빛

창문 밖 자동차 경적이 무시로 울고 가네요

비로소 일손을 놓고 발끝을 세우고 누운 어머니

명절 지나 북적대던 자손들 떠나니

집안 가득 고인 소리 간절히 듣네

층간 소음마저 다정합니다

나는 하릴없이 구부러진 지렛대 하나 들고 이리저리 서성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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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시인광장』 2023년 2월호 발표​

 


 

류인채 시인

1961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 인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전공. 문학박사. 1998년『문학예술』, 2014년 《문학청춘》 신인상 수상. 2014년 인천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나는 가시연꽃이 그립다』 『소리의 거처』 『거북이의 처세술』 『계절의 끝에 선 피에타』 등이 있음. 제26회 인천문학상 수상.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