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섶 시인 / 눈물
어린 연어가 먼 바다로 떠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짓는 어미, 그 물이 1급수인 것은 어미가 흘린 눈물 때문이다
새끼들이 동해를 지나 태평양을 건너 알래스카까지 갔다가 목숨을 걸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미의 눈물이 그리워서다
ㅡ 『시인시대』(2022, 여름호)
이종섶 시인 / 늦둥이
주먹만 한 녀석들을 주렁주렁 땅속에서 키우던 감자가 힘이 부쳤는지 오래전에 수명을 다하고 말았는데
허공에 칸칸이 마련해준 방마다 튼실한 씨알들을 기르던 옥수수도 일찍 기운이 딸렸는지 벌써부터 수염이 늘어지면서 조로하다가 무더위 끝에 세상을 뜰 수밖에 없었는데
무성하게 자라던 텃밭의 작물들 모두 여름이 지나자마자 성장을 멈추고 급히 노쇠해버렸는데
얼기설기 힘 좋은 호박은 아직도 입가에 웃음을 살살 흘리며 넝쿨을 뻗어 넓고 푸른 새 잎사귀들을 두르고 그 수더분한 치마폭 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면서 탐스런 애호박까지 달고 있었다
향을 다른 밭에 퍼트리기 일쑤였고 고소한 깨가 쏟아지는 달밤을 동네방네 부러워하게 만들었던 들깨조차 자잘한 깨알들을 털기에 여념이 없어 손바닥만 한 깻잎쌈을 더 이상 밥상에 올려주지 못하는 가을인데도
호박은 남사스럽게 깨밭까지 손을 뻗어 여전히 쌈 싸먹기 딱 좋은 싱싱하고 물컹한 호박잎을 내면서 연둣빛 순한 호박덩이까지 안고 보란 듯이 능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종섶 시인 / 버려진 드럼통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하늘만 쳐다보는 외진 바닷가 고래 한 마리 심해의 밑바닥에서 들이마신 검푸른 석유를 뱃속에 가득 채우고 살던 어느 날 뼈와 살과 내장까지 한꺼번에 빼앗긴 후 껍데기만 남은 산송장이 되었다 할 말이라도 있다는 듯 동그랗게 벌린 입 바람이 드나들며 움직여주니 기다렸다는 듯 울음부터 쏟아놓는다 눈물 위에 드문드문 부표처럼 떠있는 말들 알아듣기 힘들어 가까이 귀를 대는데 멎었던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간다 먹은 것 없이 비워내기만 하면서 남아 있는 힘을 모두 소진해버린 탓에 스스로 일어설 기운조차 없는 몸 어쩌다 평생 살았던 바다에서 길을 잃고 낯선 해변에 떠밀려와 울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남은 기름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은 업자가 돈푼이나 겨우 받을 딱딱한 가죽 고물상까지 팔러 가기가 귀찮다는 듯 아무데나 던져버리고 떠난 날부터 몸피 안쪽에 묻어있는 기름 향을 맡으며 목숨을 연명하는 사향고래 한 마리 공복의 쓰라림은 녹슬지 않는다
-<작가연대 2011년 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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