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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동호 시인 / 수원남문 돌계단 햇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31.

최동호 시인 / 수원남문 돌계단 햇살

 

 

남창 초등학교 시절

청소당번이 된 우리는

다람쥐 장난하듯 물을 뿌리고

먼지를 털며 다락과 돌계단으로 오르내렸다.

 

잠시 돌계단에 앉아 우리는 곱은 손을 내밀어

겨울 햇살을 어루만졌다.

손바닥에는 차갑지만

한줌의 햇살이 투명한 물과 같이 고였다.

 

물고기를 잡듯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던

그날 이후 돌계단에서 빛났던

한줌의 햇살은

내 영혼의 맑은 물이 되었다.

 

세상 바다 멀리 나갔을 때 거센 폭풍우

불어 닥쳐 흔들릴 때마다

마음속의 그 우물에 담긴

햇살이 항상 초심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월간 『쿨투라』 2022 년 1월호 발표

 

 


 

최동호 시인

1948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현대문학 박사).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부문 당선, 같은 해 《현대문학》에 추천완료되어 시인이며 평론가로 활동 中. 시집으로 『황사바람』 『아침책상』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공놀이 하는 달마』 『불꽃 비단벌레』 『병속의 바다』 등이 있음. 와세다대학, UCLA 등의 방문교수 및 경남대·경희대 교수, 제41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2021년 제18회 제니마 문학상. 2022년 제34회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