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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글로벌칼럼] (125) 자신의 복사를 대주교로 임명한 반성직주의 교황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7.

[글로벌칼럼]

(125) 자신의 복사를 대주교로 임명한 반성직주의 교황

로버트 미켄스

가톨릭신문 2023-05-07 [제3342호, 6면]

 

 

굳이 교황청 예절 담당자를

대주교로 임명한 것에 의문

지역교회에 대한 책임 없다면

그의 주교품은 신학적 논쟁거리

 

 

실망이다. 아마도 이게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교황청은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57세인 교황전례원장 디에고 라벨리 몬시뇰을 레카나티의 명의대주교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이게 왜 실망스러운가? 일단 교황청 관리 혹은 한 교구의 직권자가 아닌 사람을 주교로 임명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성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우선 가톨릭교회에서 예절 담당자가 주교는 말할 것도 없고 부제나 사제일 필요는 전혀 없다. 성품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여성을 포함해 능력을 갖춘 평신도도 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평신도 예절 담당자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물론 여성은 성소(聖所)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제대 근처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부류의 성직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러한 부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교황은 비록 자신이 주례하는 전례에 여성 복사를 세우지는 않지만, 여성에게 시종과 독서 봉사자로 참여하도록 문을 열었다.

 

예절 담당자 혹은 예절장은 시종과 복사의 대장 격으로 “거룩한 예식을 올바르게 준비하는 책임을 맡고, 거룩한 봉사자들과 평신도들이 아름다고 질서 정연하고 경건하게 임무를 수행하도록 돕는”(「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06항) 책임이 있다.

 

교구의 주교가 집전하는 예식을 다루는 「주교 의식서」(34~36항)에는 예절 담당자의 역할이 나열돼 있다. 예절 담당자는 성가대 선창자와 보조자, 봉사자, 주례자가 전례를 수행하도록 도우며 합당한 전례서를 준비한다. 하지만 전례가 진행될 때에는 신중함을 기해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해서는 안 되며 예식 중 부제나 보조자를 대신해서도 안 된다.

 

로마 교황청립 ‘사도들의 모후’ 대학 학장인 에드워드 맥나마라 신부는 몇 년 전 기고를 통해 예절 담당자는 전례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누군가 전례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 혹은 주교가 돼야 한다.

 

대체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성직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왜 안 그렇겠나? 교황은 성직 제일주의, 엘리트 의식, 경칭에 격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황이 사제들에게 ‘몬시뇰’이라는 명예 호칭을 내리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교는 칭호가 아니다. 부제직과 사제직, 주교직으로 구성된 세 개의 성품 중 하나다. 대주교는 주교품을 받은 이에게 주는 명예 호칭으로 성사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다른 것을 더하지 않는다. 실제로 프랑스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대주교나 대교구를 지칭할 때 그저 주교와 교구라고만 말한다.

 

주교직을 말하는 그리스어 ‘episcopoi’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감독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를 감독하는 책임을 맡지 않은 이에게 그가 그동안 하던 일을 존중하는 의미로 누군가를 주교로 서품하는 일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황청 관리들은 이러한 목적으로 주교와 대주교로 임명된다. 그리고 모두 ‘명의교구’의 주교들이다. 감독할 교구가 없는 주교는 신학적으로도 교회론적으로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황은 왜 자신의 예절 담당자를 주교로 임명했을까? 분명히 말하지만, 이는 라벨리 대주교를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라벨리 대주교는 2021년 교황전례원장으로 임명된 후 출중한 능력으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다. 또 그가 교황전례원장 최초로 주교로 임명된 것도 아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8년 자신의 교황전례원장 피에로 마리니를 대주교로 임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라벨리 대주교가 그의 업무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주교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교황청에서는 오랫동안 위계서열이 있었다. 평신도는 성직자 위에 설 수 없고, 사제는 주교 위에, 주교는 대주교 위에, 대주교는 추기경 위에 설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로 이러한 관행을 깨버렸다. 교황청 개혁에 관한 이 교황령을 통해 교황은 교황청 부서를 이끌기 위해 꼭 주교가 될 필요가 없다고 천명했다. 심지어 평신도도 성품성사가 아니라 교황의 임명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교황전례원장에도 적용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라벨리를 대주교로 임명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교황청 안에서 그의 개혁에 훼방을 놓으려는 이들을 당황하게 하고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일까? 어느 이유이든 간에 성직주의에 대항해 싸우고, 성품이 아니라 세례가 가장 중요한 성사라고 강조하는 교황이 자신의 뜻과 상충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의 교황과는 실제로 다르다고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짜로 크게 실망하게 될지는 앞으로의 그의 행보에 달렸다.

 

 


 

로버트 미켄스(라 크루아 인터내셔널 편집장)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