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8/1010

용혜원 시인 / 벚꽃 피던 날 외 3편 용혜원 시인 / 벚꽃 피던 날 이 봄날 누가 사랑을 시작했나 보다 푸른 하늘에 꽃 축포를 마구 쏘아대고 있다 꽃이 화창하게 피어나는 기쁨이 이렇게 충만할 수가 있을까 꽃이 신나게 피어나는 기쁨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웃음 꽃다발이 온 하늘을 가득 덮에나가고 있다 두 손을 벌리고 마음껏 노래하고 싶다 춤추고 싶다 마음껏 뛰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용혜원 시인 / 봄꽃 필 때 찾아오시게나 산천에 봄꽃 필 때 꽃길 따라 찾아온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겨우내 모진 바람에도 끈질기게 견딘 땅이 온 힘을 다해 피운 꽃들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가 봄꽃 필 때 날 찾아온다면 나도 한걸음으로 달려나가 반갑게 맞아주겠네 우리 서로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음이 참 반가운 일이 아닌가 산에 봄바람이 불어오는데 날 찾아온다는 .. 2022. 8. 10.
백인덕 시인 / 모르는 사이 외 1편 백인덕 시인 / 모르는 사이 누가 오지 않아도 밤은 깊어간다. 어둠에 압도당한 불빛, 밤은 깊이 웅크린 것들을 되살린다지만 아무 데나 가 걸리는 마음은 가변성 (可變性) 좋은 병(病)일 뿐, 계절은 저절로 돌아오고 모든 봄꽃은 자기(自己)의 완성을 위해 핀다. 예전에 도,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얼얼한 손끝으로 검은 자판을 두드리며 먼 대륙, 찟긴 나라와 사람을 말하고 싶지만 거리(距離)는 거리에서 가늠될 뿐, 골목 안에서 우는 고양이 털빛이 한밤의 모든 생각을 뒤집는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허기일까, 춘정(春情)의 시작일까, 잘못 든 길의 단순한 공포일지도 모른다. 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깊어가는 밤은 낮은 곳에서부터 웬 고양이 울음에 찟길 것이다. 모르는 사이, 매장(理葬.. 2022. 8. 10.
홍석영 시인 / 나는 지금도 공사 중 외 2편 홍석영 시인 / 나는 지금도 공사 중 시도 때도 없이 강과 바다가 갈라지고 땅과 하늘이 쪼개지고 어디에서나 숙명적인 푯말 “공사 중”을 만난다 어쩌다 지구의 미아가 되어 우주를 꿈꾸어 보기도 하지만 어찌하면 좋을까? 온통 주변은 공사 중 상처 난 가슴은 우울증으로 골이 깊다 그동안 그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여기까지 질주해 왔지만 아직도 나는 공사 중 부족한 것 채우고 고치고 만들고 버리고 아직도 복고 소란을 피워보지만 그래도 내 마음의 작업장은 미완성 나는 지금도 공사 중 현재 진행형이다 (『다층』 2021년 여름호) 홍석영 시인 / 내가 돈다, 바람개비처럼 내가 돌고 네가 돈다 사람들이 돈다 땅이 돌고 산이 돈다 강이 돌고 바다가 돈다 지구가 돌고 세상이 돈다 태양이 돌고 우주가 돈다 온통 돌기만 .. 2022. 8. 10.
박금성 시인 / 뼈다귀 외 2편 박금성 시인 / 뼈다귀 어미 개가 자신의 머리만 한 뼈다귀를 물고 나타났다 이틀 만에 나타났다 어미 개가 뼈다귀를 입에 꼭 물고 있다 강아지들 앞에서 턱을 쭉 빼고 입 끝을 오므리고 뼈다귀가 느리게 나온다 어미 개의 입에서 거북이 몸에서 머리가 나오듯 느리고 근엄하게 둥글게 앉은 강아지들이 뼈다귀 모서리를 갉아먹는다 어미 개가 뼈다귀를 바라본다 귀 끝을 내려뜨리고 수녀가 십자가를 바라보듯 여승이 관음을 바라보듯 모서리 뜯기는 뼈다귀를 바라본다 강아지들의 입안에서 달각달각 비명을 지르는 뼈다귀 어미 개가 느리게 일어난다 뼈다귀에 입이 붙은 강아지들을 보면서 어미 개가 왔던 길로 내려간다 새끼들을 돌아보며 내려간다 꼬리를 눕히고 내려간다 뼈다귀에 입이 붙은 강아지들이 뼈다귀 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는다 온몸을.. 2022. 8. 10.
조병완 시인 / 창가에서 외 1편 조병완 시인 / 창가에서 화분의 고춧대는 하얀 별모양 꽃을 늘려갔, 살아난 금낭화가 처음으로 꽃등을 세 개 매달았, 일일초는 지고 또 피고 양란도 향기 없는 꽃을 벌렸, 화분에서 흙 밖으로 나온 새끼 지네 한 마리는 살해되었, 맥주잔에 빠진 초파리 한 마리도 살해되었,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토막 난 채로 안주가 되었, 대나무 가지 몇 개도 잘려 쓰레기봉투에 담겼, 오늘이 생의 끝날이 된 것들에게 아무도 축배하지 않았, 다육이의 말라 가는 맨 아래 잎이 미세하게 더 쭈그러졌, 시집은 읽히지 않고 펼쳐진 채 햇살을 받았, 창밖엔 어제처럼 배달오토바이가 지나다녔, 김밥집 앞에 뒷문이 열린 택배트럭이 비상등을 깜박이고 있, 여자애 몇이 쫑알쫑알 까르르르 단역처럼 지나갔, 이 창안에는 강요도 시샘도 자비도 슬픔도 .. 2022. 8. 10.
이태관 시인 / 순간 이태관 시인 / 순간 그대가 내게 한 아름의 사랑이란 이름에 꽃을 던져 주었을 때 난 들길을 걷고 있었네 그래, 짧지 않은 삶에 간장 고추장 이런 된장까지 다 버무려 한 끼의 식사 한 잔의 커피, 하룻밤은 언제나 누추한 순간이란 걸 알고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만남은 허점투성이의 약속일 뿐인데 꽃이 터져 오르는 순간 난 그대에게 눈길만 주었을 뿐이네 바람은 불어 가더군 꽃은 지더군 지는 꽃들이 거름 된다는 걸 훗날, 알게 되었네 (시작, 2021년 여름호) 이태관 시인 1964년 대전에서 출생. 1990년 《대전일보》신춘문예 당선. 1994년 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집으로 『저리도 붉은 기억』(천년의시작, 2003)과 『사이에서 서성이다』 (문학의전당, 2010) 가 있음. 2022. 8. 10.
이승예 시인 / 모퉁이에 새가 산다 이승예 시인 / 모퉁이에 새가 산다 시골집에 내려와 짐을 푼다 어제 싸 온 도시가 우루루 쏟아져 나온다 창고 문을 열기 위해 모퉁이에 걸린 거미줄의 기호에 홍채를 맞춘다 문이 열린다 ​잔디 깎는 요란한 소리를 밀어내는가 풀잎 사이를 사색하던 뱀이 돌아가고 마당은 다시 잔디를 키우는 자세로 뱀을 기다린다 ​굳이 모퉁이라 불리는 것은 목숨을 끌어안고 홍채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오늘도 이 모퉁이 수국이파리 사이는 새들의 성지 ​​사방이 뻐꾸기 울음으로 가득한데 수천만 번 드나들어 틀었을 저 둥지는 텃새의 소유다 며칠 후 붉은 머리 오목눈이가 부화 되면 새끼가 다섯 마리여야 한다 목숨이 잉태한 날개가 모퉁이의 역사가 되기까지 다시 거미줄에 눈을 맞춰 알 고리즘을 채운다 품었던 알이 뻐꾸기알일 리 없다 불편한 .. 2022. 8. 10.
서춘희 시인 / 모래라는 빛 외 1편 서춘희 시인 / 모래라는 빛 빛은 싸울 때 생긴다 구기고 싶은 의지는 별이 되었다 짠물을 뱉으며 복서가 뛴다 검은 바다를 벗어나 복서가 뛴다 우리는 입이 없는 작은 벌레 나약한 병사 부러진 의자에 묶인 연처럼 깊은 잠을 청할 줄 모른다 불분명하게 말라가는 어제의 뱀처럼 당신과 나는 젖은 모래를 파고든다 봤어? 못봤어... 삼킬 수 없는 것을 삼킨 얼굴로 마주보았지 모래를 따라 모래 끝까지 발이 빠졌지 오래... 가능한... 싸우자... 드러나지 않은 밤에 집중하는 이곳의 나무처럼 르르르르 한 세기를 그으며 우는 유성처럼 서춘희 시인 / 위생 기본적인 저녁마다 머리와 꼬리를 잃고 나란히 포크를 든다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시곗바늘의 끝, 누군가 한 말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드러나는 부분을 래핑한다... 2022. 8. 10.
지하선 시인 / 여윈잠 외 5편 지하선 시인 / 여윈잠 공원 한쪽 낡은 의자에 푹 잠겨 있는 그 남자 허름한 오후가 매달려 있는 등위로 햇살은 허리 잔뜩 구푸리고 그의 잠을 굽고 있어요 여러 색깔로 구워지고 있는 그의 꿈이 헤벌쭉이 벌린 입에서 설겅거려요 보름달 부풀 듯 탱탱했던 한때가 그에게도 있었다는데 그 누런 세월 한 점씩 떼어먹을수록 허공의 길 위에서 달빛을 뒤척이며 여위어 갔죠 옆구리 터진 낮달처럼 널브러진 불안한 시간, 뒤집었다가 뒤집혔다가 부수수 아직 덜 구워진 잠이 지친 어깨를 꾸욱 꾹 눌러요 얼핏 스친 꿈속에서 하다만 말 한마디 빠르게 오후 4시의 행간을 빠져나가요 누군가 그를 부르는‘옛 시인의 노래’가 그의 손끝에서부터 살얼음처럼 아슬한 내일의 무릎 아래로 길게 누워요 지하선 시인 / 발편잠 1 네 몸을 내 안에서 환.. 2022. 8. 10.
김연종 시인 /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 외 1편 김연종 시인 /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 좌측통행이 세상의 진리라고 늘 한쪽으로만 다니다가 척추 측만증이 생길 즈음 세상의 등뼈는 조용히 우측으로 바뀌었다 우측통행만이 공평하게 자리를 내주고 무사히 속도를 줄일 수 있다고 나는 늘 바른 사나이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심장은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바른 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고 남은 소변을 털어 내지만 왼쪽을 능멸하는데 가장 익숙하게 사용되었다 견고한 두개골 속 뉴런들도 장벽을 허물어야 좌우 소통이 된다 푸른 시냅스에 붉은 등이 켜지면서 대뇌피질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버스노선보다도 더 희미해진 내 이념의 중앙 분리선 아직도 헷갈리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만히 페달을 밟는다 황색등에 갇혀버린 내 언어는 여전히 안개등처럼 깜박거리고 김연종 시인 / 간에 기별하.. 2022.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