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8/1413

[말씀묵상] 식어버린 열정, 주님 사랑의 불꽃으로 다시 뜨겁게 [말씀묵상] 연중 제20주일 - 식어버린 열정, 주님 사랑의 불꽃으로 다시 뜨겁게 제1독서 예레 38,4-6.8-10 / 제2독서 히브 12,1-4 복음 루카 12,49-53 가톨릭신문 2022-08-14 [제3306호, 19면] 변화하려는 노력 상실한 인류에게 뜨거운 사랑의 불 지피시는 예수님 나태함 떨치고 의미 있게 살아가길 한스 멤링 ‘최후의 심판’ (1467~1471년, 일부). 사랑이 식어가는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해외에 잠시 머물 때, 따뜻한 남유럽의 한 수도원으로 공동체 피정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피정 집은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호숫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호숫가로는 올리브나무 사이로 호젓한 산책로가 길게 나 있었습니다. 천국이 따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 .. 2022. 8. 14.
신동옥 시인 / 화살나무 외 1편 신동옥 시인 / 화살나무 젊어서는 소리깨나 했다 육자배기 가락을 크게 한 바퀴 돌아서 손가락에 반지를 꿰듯 고향엘 들렀다, 타관에 들어서는 드높던 목청이 절구통 수챗구멍으로 졸졸 새 나가는 통에 주저앉았다 조왕신이 들러붙은 거겠지 북채로 이랑을 갈고 꽹과리로 도랑을 파 보았댔자, 농사에는 젬병이었다 두드리면 마른 흙 툭툭 부서지는 농사월력 너머 흙벽으로는 자식 여섯을 낳아 길렀다 봉제공장으로 신발공장으로 읍내 농고로 그나마 사람 노릇하는 셋을 보내고 남은 셋은 버버리였다 소리 귀신이 들러붙어서, 밑을 탄 내복 입혀 고방에 가두어 두어도 피붙이라는 게 풀기엔 질척이고 엮기엔 짧은 이끼나 매한가지 굴 껍데기 갑오징어 뼈에 마른 닭똥을 갈아 만든 고약을 발라서 침독 오른 입언저리 번들번들, 볕 좋은 날에는 마.. 2022. 8. 14.
권혁수 시인 / 새우의 눈 외 1편 권혁수 시인 / 새우의 눈 알고 있니? 순대국집에서 새우젓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릴 때 새우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는 거 생각해 보았니? 깍두기 조각과 순대를 허기진 이빨로 잘근잘근 씹는 동안 새우가 두 눈 또렷이 뜨고 꼬리 한번 치지 않았다는 거 본적 있니? 너의 푸념과 한탄 일일이 다 들어주고 네가 기어서 빠져나온 도시의 밑바닥 같은 서해 갯벌 짜디짠 소금에 절어 세상 모든 게 다 작아지더라도 결코 작지 않는 마침표 하나 상상해 보았니? 네 쓰라린 속 다 들여다 봐주고 그 속 훌훌 다 풀어주고 말똥말똥 다시 돌아가는 먼 바다의 내시경을 권혁수 시인 / 보수공사 중 싸늘하게 맑은 초겨울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보수공사 중 온 몸뚱이가 뿌리 없는 나무 등걸 같다 창문엔 커튼이 쳐져 한낮에도 생각이.. 2022. 8. 14.
예명이 시인 / 클렌징크림 외 3편 예명이 시인 / 클렌징크림 불빛이 스며든다. 블라인드를 내린다. 어둠이 액체라면 바닥까지 짜, 바닥을 펴, 바닥이 투명한 밤으로, 밤의 감정은 희고 매끄러울 것 같다. 느낌의 후면처럼 전혀 다르지만, 같은. 밤의 감정이 남아있다 해도, 아침이면 블라인드를 올린다. 손이 올린 블라인드, 블라인드가 올린 밖, 모닝커피가 조용조용 무늬를 퍼뜨린다. 희고 고운 끈적임을. 결이 난 그것은 표면도 내부도 조용조용. 조용함이 무질서해질까, 무질서를 가장한 지극히 극한 부드러움으로. 어쩌면, 밤은 어둠을 흡수하기 전에 아침을 코팅해놓고 최대한 탄력 있게 그것을 펴 바르듯. 밤의 징후는 불빛, 그것의 징후는 눈빛, 불안이 내공인 몽타주처럼 흘러내릴 듯 흘러내릴 듯, 부드러워. 그것이, 그것이 아니었을 때, 눈과 눈이 바.. 2022. 8. 14.
이길상 시인 / 유턴 지점의 세탁소 외 4편 이길상 시인 / 유턴 지점의 세탁소 십 년 전에도 그들의 집은 세탁소였다 세탁소는 지루한 그림 속에 있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들 무기력한 일상이 옷 밑단 속에 햇살로 꿰매졌다 퇴근 후에도 뭔가를 찾는 사람들 그의 옆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신발장 속의 때늦은 포부가 하루하루 지친 그의 그림에 자주 올라왔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폐쇄된 회로 같았다 마음이 분주히 움직였으므로 정작 그리고 싶었던 게 찾아왔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림 속엔 불어터진 시간만 쟁여졌다 너덜거리는 시선으로 달빛이 스몄다 빈 주머니에서 담배가 만져졌고 다림질만 해도 삶의 속도는 항상 제자리였다 찾아가질 않는 옷들이 있어 겨울이 왔다 아내는 입지 않을 옷들을 마구 사들였다 그녀는 가벼운 색 옷만으로도 환멸 덩.. 2022. 8. 14.
최현우 시인 / 멍 외 1편 최현우 시인 / 멍 한 알의 사과는 냉장고 속에서 아주 잠깐씩만 빛으로 풀려나오다 다시 어둠에 갇히며 썩어버렸다 아니, 그 전부터 사과는 더 이상 사과의 바깥으로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을 것 그래서 사과는 냉장고 속 어둠보다도 어두운 사과를 알고 있었을 것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너를 떠났고 꿈에 복수(腹水)가 가득 찰수록 웃음이 점점 얇아지고 먹지 않아도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낸다 더 썩을까봐 먹으려던 사과를 누군가 이미 먹고 있다 사과의 밀봉을 뚫고 흘러나오는 사과의 피 묻은 얼굴 벽시계 옆, 뚫린 창밖으로 이름 모를 새가 초침소리를 내며 지구를 찢고 있었고 너는 나를 떠나지 않았으므로 밤이 온다 최현우 시인 / Knocking a grave 두드릴까 누를까 목련이 떨어지는데 함께.. 2022. 8. 14.
<디카시>이혜미 / 침묵의 단면 이혜미 시인 / 침묵의 단면 보여줄까 구슬이 되어가는 슬픔을 심장에 맺혀 비명이 된 비밀들읗 계간 『디카시』 2022년 여름호(제42호) 발표 이혜미(李慧美) 시인 198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창비, 2011)과 『뜻밖의 바닐라』(문학과지성사, 2016), 『빛의 자격을 얻어』(문학과지성사, 2021)가 있음.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제15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賞 수상. 제10회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2022. 8. 14.
서희 시인 / 지금 함박눈이 외 1편 서희 시인 / 지금 함박눈이 상층권의 구름들이 대륙권을 장악하다 추위가 몰려오자 저희끼리 부딪쳤군, 조각난 몸뚱이끼리 다시 또 뭉치다니 63빌딩 겅중겅중 아파트를 뛰어내려 난분분 춤을 춘다 16층 유리창 밖 잊을 건 잊어두라고 허락하듯 쌓이다니 ㅡ『제11회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1) 서희 시인 / 훼방 시큰둥한 국과 밥을 어쩌다 붙여놓으니 친밀해진 둘 사이는 띄어쓰기도 필요 없다 이렇게 하나로 묶인 우리 곁의 '국밥' 이여 한번 맺어지면 나눌 길이 없다는데 어찌 떼어낼까 골똘히 생각하다 급기야 '따로'를 붙여 나눠놓는 저 심보 2021. 겨울호 서희 시인 경북 영주에서 출생. 2011년 《시와 세계》로 등단. 2022. 8. 14.
안이삭 시인 / 국경에 서다 외 1편 안이삭 시인 / 국경에 서다 우국(兩國)에 다녀왔다 어깨에 툭! 입국허가 스탬프가 찍히고 나서야 내가 국경을 넘어섰음을 알았다 우국의 국경에는 이정표가 없다 우국에는 우국의 언어가 있다 내가 아는 모든 말은 외래어로 취급받거나 특별한 패턴의 장식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젖는 온도와 속도에 따라 높낮이가 결정된 말은 조용히 흘러가다가 상대에게로 증발하거나 스며든다 가끔씩 알아듣지 못해 허둥대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나는 금방 눈치 챘다 우국의 언어는 조용히 천천히 물들어 온다는 것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은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여 있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 얼굴을 담가 동조를 표시할 때마다 기쁨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우국은 어떤 사람의 입국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국경에서 머뭇거리다가 난감한 얼굴.. 2022. 8. 14.
[영화의 향기 with CaFF] (174) 밥정 [영화의 향기 with CaFF] (174) 밥정 그리운 어머니에게 바치는 한상차림 가톨릭평화신문 2022.08.14 발행 [1674호]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마태 9,10) 2020년 10월 개봉했던 ‘밥정’은 방랑 식객 임지호 셰프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연에서 식재료를 찾아 생명을 살리는 음식으로 승화시킨 요리를 선보였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것은 요리의 재료가 된다. 청각, 백지, 잣솔방울, 장구팅, 망초대, 지칭개, 박나물대 같은 보통 사람은 잘 모르는 재료가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탈바꿈한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연에서 찾.. 2022. 8. 14.
박수중 시인 / 장대비 단상斷想 외 1편 박수중 시인 / 장대비 단상斷想 오래전 첫사랑과의 이별같이 찾아온 장대비를 흠뻑 맞으며 일순一瞬 떠오른 생각은 우주의 심연속으로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64000개 점으로 이루어진 별들 속에 한개 푸른 점. 그 속에 76억 생각이 살고 있고 그 생각속에서 생명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느니 의미의 있고 없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대체 우주속 먼지의 먼지, 그 먼지의 10대손孫 먼지만도 못한 내 그리움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박수중 시인 / 배달의 민족 환웅熊 '배달의민족'이 어느새 치킨鷄 배달의 민족'으로 변용되더니 팔렸다 대동강 물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異민족에게 팔려버렸다 하늘위 상징을 땅위로 끌어내려 세속화世俗化하는 현대판 우화萬話의.. 2022. 8. 14.
허은실 시인 / 삼 척 외 3편 허은실 시인 / 삼 척 칼을 갖고 싶었지 고등어처럼 푸르게 빛나는 칼이 내 몸에 들어와 찔린 옆구리로 당신을 낳았지 바다가 온다 흰 날을 빛내며 칼이 온다 허은실 시인 / 바람이 부네, 누가 이름을 부르네 입안 가득 손톱이 차올라 뱉어내도 비워지지 않네 문을 긁다 빠진 손톱들 더러는 얼굴에 묻어 떨어지지 않네 숲은 수런수런 소문을 기르네 바람은 뼈마디를 건너 몸속에 신전을 짓고 바람에선 쇠맛이 나 어찌 오셨는지요 아흐레 아침 손금이 아파요 누가 여기다 슬픔을 슬어놓고 갔나요 내 혀가 말을 꾸미고 있어요 괜찮다 아가, 다시는 태어나지 말거라 서 있는 것들은 그림자를 기르네 사이를 껴안은 벽들이 우네 울음을 건너온 몸은 서늘하여 평안하네 바람이 부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네 몸을 벗었으니 옷을 지어야지 허은실.. 2022.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