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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613

신영연 시인 / 풀의 시간 외 1편 신영연 시인 / 풀의 시간 아침의 기후로 날아든 영혼, 마중하는 자세로 비가 내립니다 여기가 어디던가 낯익은 흙의 온기에 풀은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입문을 열어 푸르름을 보여줍니다 이른 아침 몸을 낮추고 다가서면 잠 깨어 기지개 켜는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햇살의 어부바에 재롱을 부리고 바람의 술래에 균형을 잡다가도 투박한 손끝에서 칭얼거리면 어느새 땅은 촉촉한 눈빛으로 젖을 물립니다 누군가는 새 옷을 갈아입고 길을 떠나는데 ​풀은 온전히 풀의 시간을 살아내고만 있습니다 ​ ​신영연 시인 / 유리병은 입술을 닫고 ​ 월미도 향한 바닷길 부르다 목 메인 그대의 끝자락, 갈매기가 날아오네 입을 닫았네 귀도 닫았네 둥둥 몸은 뜨기 시작했네 쏟아지는 말들을 혀끝으로 감싸 안고 물의 길로 들어서네 어둠이 내게 .. 2022. 8. 16.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3) I.N.R.I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3) I.N.R.I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 가톨릭평화신문 2022.08.14 발행 [1674호] ▲ 주님의 십자가 죄명패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들어 올려진 왕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며, 주님의 죽음으로 모든 인간의 구원을 가져다준 거룩한 표징이다. 요한 복음서 말씀처럼 주님의 죄명패에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글이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로 새겨져 있는 스페인 엘에스쿠리알 수도원 십자가. 가톨릭교회는 성경과 교리 내용을 오류 없이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초기부터 성화상(聖畵像)을 이용했다. 신앙 지킴이와 교리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는 성화상은 문자와 기호, 색과 형상 등 다양한 시각 코드를 통해 그리스도교에 관한 풍성.. 2022. 8. 16.
박주용 시인 / 나뭇잎 신발 외 1편 박주용 시인 / 나뭇잎 신발 처음엔 지축이 기울어 신발 닳는 줄 알았네 푸른 비늘에 바람 들면 웃음도 그냥 가벼워지는 줄 알았네 허나 시간이 이울수록 숨 깊었던 달빛도 흐릿해지고 뻐꾸기 울음도 등뼈를 슬슬 빠져나가 물관이 시나브로 마르는 것이었네 증상은 점점 심해져 습했던 속눈썹도 어리둥절해지고 작은 바람에도 염기 없이 실실 웃는 것이었네 숨 가쁘게 살아도 자꾸 주눅 들어 옆으로 드러눕기도 하고 자신을 마셔버린 취객처럼 지그재그로 걸으며 가끔 구름 발자국이라도 찍어 보는 것이었네 자전과 공전의 징한 삼백예순 어느 날 로또 가게 지나다 물컹한 혜성이라도 만난다면 그 꼬리 덥석 잘라 닳아진 곳 깔창으로 괴어보고 싶은 생각도 왜 드는 것이었네 나 활엽수는 이름만 화려하지 걸음이 비정규직 팔자라 신발이 바깥쪽으.. 2022. 8. 16.
<디카시>김왕노 시인 / 몽중夢中 김왕노 시인 / 몽중夢中 누군가가 자전거른 타고 와선 세워두고 잠시 잠들었으나 그 때부터 그는 꿈속으로 달린다 그의 꿈은 평생 달리는 것 엡진 『시인광장』 2022년 7월호 발표 김왕노 시인 1957년 경북 포항 동해 출생. 공주교대 졸업. 아주대학원 졸업.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 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등이 있음. 2003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년 제7회 박인환 문학상, 2008년 제3회 지리산 문학상, 2016년 제2회 디카시 작품상 2016년 수원문학대상 등 수상. 현재 웹진『시인광장』 편집주간,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한국 디카시 상임이사, 한국시.. 2022. 8. 16.
박종빈 시인 / 줄탁啐啄, 위를 걷다 박종빈 시인 / 줄탁啐啄, 위를 걷다 액자 유리가 깨지자 야크가 이동한다 황량한 이쪽에서 초원이 있는 저쪽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풍경은 바람 따라 흔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히말라야 고원 기차 길 따라 나도 머리카락 휘날리며 걸어야 하는 것이다 거울에 비쳐지던 기억들을 버리고 스스로 눈 덮인 산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나는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등나무 꼬투리가 길 한 쪽을 쪼자 열매가 굴러간다 도로 이쪽에서 흙이 있는 저쪽으로 굴러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은 황무지에 틈을 벌리며 흘러야 하는 것이다 나무 위로 흐르는 지난 계절의 꽃향기 따라 나도 허공 한 쪽 디디어야 하는 것이다 언어 흉내 내며 살았던 유아기의 거울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을 걷는다 .. 2022. 8. 16.
손종호 시인 / 그대의 벽지(僻地) 외 1편 손종호 시인 / 그대의 벽지(僻地) 바람은 늘 포구로부터 불어왔다. 거기서는 닿을 수 없는 정적이 홀로 젖어 있다. 자정이면 썰물의 향방에 씻기는 그대 맨발. 어느 지체(肢體)도 떠는 듯싶다. 강약조에 몸을 맡긴 뱃전들의 숙취는 안개 저쪽 어떤 날개를 예비하고 있을까. 온몸을 밝혀 뜬 만월의 때에도 우리는 손톱 밑에 숨겨 둔 죄의 의미를 밝히지 못한다. 꿈, 사랑도 그렇다. 문득 낡은 소매의 어둠이 부리는 어망 안으로 근해(近海)의 눈먼 고기들이 찾아 헤매는 고향. 그것은 최초의 한 가닥 빛이었는가 잠속의 무한 눈물이었는가 바람의 통로를 따라 더 멀고 강한 구름을 쫓는 바닷새들 부러진 돛들, 폭풍의 수많은 바위틈으로 밤새 철석이는 어둠의 이마들. 새벽이면 하얀 소금으로 남는 이여. 쩍쩍 등 갈라진 간조(.. 2022.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