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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안정옥 시인 / 꽃들의 역습 안정옥 시인 / 꽃들의 역습 꽃은 이제 달빛이다 달빛을 그럴듯하게 찍어낸다 월광초(月光草)를 받아내려, 내가 그곳으로 가려면 몸을 달의 형상으로 휘어야 한다 한 송이 걸렸다 나는 얼마나 오래 떨리도록 꽃을 탐했나 책상 위의 꽃들이 시큼해질 때까지 묶어 두었다 꽃들은 내 슬픔의 .. 2019. 2. 15.
안정옥 시인 / 그러니까에 대한 반문 그러니까에 대한 반문 안정옥 시인 그러니까 내 뜻 없이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합해 내가 되었으니 나는 혼합물인 셈이지 나는 나 인줄 알았는데 나인 것은 하나도 없었어 그러니까 이 혼합물과 저 혼합물에 부대낀다는 것 그건 비애였지 이곳에서 멀리 도망친 날들을 손꼽아봐, 그곳에는 .. 2019. 2. 15.
최금진 시인 /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2019' 제12회 웹진 시인 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賞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최금진 시인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는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 2019. 2. 15.
장수철 시인 / 기대하지 않은 여행의 어떤 쓸모 기대하지 않은 여행의 어떤 쓸모 장수철 시인 여행에서 일찍 돌아온 우리는 트렁크에서 짐을 내린다 남은 나날을 음미하던 빈 집이 소란스럽게 구는 고요를 창 밖으로 급히 내던졌다 체크리스트의 역순으로 쌓아둔 며칠치의 멀쩡한 양말과 속옷과 알약들은 이제 캐리어 안에서 아무렇게.. 2019. 2. 14.
오명선 시인 / 어떤 잠 어떤 잠 오명선 시인 어제는 오빠가 죽고 그제는 친구가 죽고 오늘은 내가 죽었다 그리하여 모든 계절이 사라지고 겨울에 멈췄다 내가 아닌 내가 죽은 나를 보듯 통증 없는 통증으로 수평을 놓쳐버린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으로 믿을 수 없는 현상으로 우거져 죽음으로 연결된다 내.. 2019. 2. 14.
강서완 시인 / 사과와 도마뱀과 벽 강서완 시인 / 사과와 도마뱀과 벽 엽서에 든 사과를 바람 한 줄기로 읽었군요 당도를 가늠하는 저울이 형체를 허무네요 붉은색을 흔들어 바닥에 쏟는군요 아무리 바닥을 쳐도 사과는 사과, 도마뱀이 제 꼬리를 물고 여름을 달려요 허물어진 입자가 모래시계를 뒤집어요 한여름에 쏟아진.. 2019. 2. 13.
조길성 시인 / 혼자 두는 바둑 외 1편 조길성 시인 / 혼자 두는 바둑 돼지고기를 삶으면서 저녁 비 내립니다. 하수는 겁이 없고 고수는 변명이 없다며 검은 돌을 쥐고서 어둠이 내립니다. 끈 없는 구두에 질끈 끈을 동여매며 오시는 저녁입니다. 흰 돌이 부족해서 어쩌나 걱정하시며 낙숫물 듣는 저녁입니다. 살아 있는 유리창.. 2019. 2. 13.
김선미 시인 / 아무도 없는 마을 아무도 없는 마을 김선미 시인 헬멧을 쓰고 갔어 눈코입이 모인 사람끼리 몰려다니면 유령이 될 거 같지 않았거든 친구끼리 가족끼리 연인끼리 굴리거나 구르기를 좋아하는 것을 쓰고 다니는 건 어쨌든 기분 좋아지는 일이지 머리가 굴러다니는 상상을, 세상 어디든 갈수 있을 것 같아 .. 2019. 2. 13.
김택희 시인 / 사진의 방식 사진의 방식 김택희 시인 흑백으로 다가가 마주하니 색상 선명해지네 실제와 기억의 간이역 돌아 나올 수 없는 틀 안의 질문 반사된 빛은 내가 모르는 경계 깜박이면 안 된다고 했지 빛이 좋아 가만히 서 있었어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아 예견은 보이지 않는 암부 뒷모습의 문장이지 빛의.. 2019. 2. 13.
이서화 시인 / 고양이 자리 고양이 자리 이서화 시인 춥고 어두운 빈 상가 옆 고양이 자고 간 자리가 따듯하다 체온을 스스로 끓이고 덜어놓고 간 자리 미온(微溫)이라는 말은 가느다란 몇 가닥 열선 같은 수염 자락 잡동사니들의 틈 나뭇잎, 버려진 천 조각들도 체온이 있을 때가 있다 고양이가 웅크렸던 자리마다 .. 2019. 2. 12.
임지훈 시인 / 쌤소 쌤소 임지훈 시인 쌤소가 굴러간다. 삐뚜름하게 굴러간다. 가지 않으려는듯 굴러간다. 의지박약으로 굴러간다. 적재의 볼록한 기억도 따라간다. 바퀴는 휘어져 팔자를 그리면서 구르고 있다. 김포공항을 힘에 부쳐 나이트가 튕겨나간 쌤소 쌤소만 굴러간다. 광고판 속의 쌤소나이트는 조.. 2019. 2. 12.
김언 시인 / 방황하는 기술* 김언 시인 / 방황하는 기술* 친구가 있고 여자친구가 있으며 토론이 있고 회합장소가 있다 내가 하룻밤 묵었던 호텔이 있고 매음굴이 있으며 유치원이 있고 가끔 쉬어가는 벤치가 있다 학교로 가는 길이 있으며 장례를 지켜보는 무덤들이 있다 지금은 잊혀진 유명한 카페가 있고 한번은 .. 2019.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