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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섭 시인 / 이따위 세상에 사랑 김유섭 시인 / 이따위 세상에 사랑 피 맛 나는 사랑이 좋아, 타액 섞인 위스키 더블 날마다 배달되는 챗봇 실루엣 따위 쓰레기통에 처넣지.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웃는 건 가슴으로 안아 춤춘다는 것, 목숨 건다는 마음 짓 이리와 너를 만들어 줄게 사랑은 전속력으로 달려와 죽어도 좋아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펑 사라져 버릴 수 있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쿵쿵 타들어 가는 심장 박동 발자국 찍으며 나란히 불구덩이 모래사막이라 해도 맨발로 걷는 거야. 그치?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김유섭 시인 경남 남해에서 출생. 2011년 《서정시학》 신인상 등단. 2014년 《수필미학》 평론 신인상. 시집 『찬란한 봄날』 『지구의 살점이 보이는 거리』. 2013년 시흥문학상. 2014년 아르코창.. 2023. 5. 29.
최승철 시인 / 열매를 맺는 방법 외 2편 최승철 시인 / 열매를 맺는 방법 비만의 원인은 신석기 유목민의 DNA가 체내에 탄수화물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꽃을 전자레인지에 3분 동안 가열하면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양귀비꽃은 옮겨 심으면 죽는다. 예술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오래 생각했다, 가, 비누 거품을 칫솔에 묻혀 이빨을 닦았다. 그냥, 산다, 는 말 이면에 거울처럼 수은이 덧칠되어 있다. 이미 가 버린 것에는 가는 것이 없다 한시(漢詩)를 읽는 겨울밤은 따뜻했다. 새우의 등에서 내장을 빼내 그가 평생 바다에서만 앓았을 바람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비릿한 바다의 숨결 한 마디를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낸다. 근원적인 외로움은 당신을 사랑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류 역사가 수천 년인데도 인간이 왜 사는지 그 답변 하나를 찾지 못했다. .. 2023. 5. 29.
이홍섭 시인 / 등대 시인 외 2편 이홍섭 시인 / 등대 시인 나 후회하며 당신을 떠나네 후회도 사랑의 일부 후회도 사랑의 만장 같은 것 지친 배였다고 생각해 주시게 불빛을 잘못 보고 낯선 항구에 들어선 배였다고 생각해 주시게 이제 떠나면 다시는 후회가 없을 터 등 뒤에서, 등 앞으로 당신의 불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 먼 바다로 나아갈 터 후회도 사랑의 일부 후회도 사랑의 만장 같은 것이라 나 후회하며 어둠 속으로 나아가네 이홍섭 시인 / 터미널 ​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 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2023. 5. 29.
김영준 시인(속초) / 십우도十牛圖 외 3편 김영준 시인(속초) / 십우도十牛圖 참 멀고도 먼 길이네 가는 길 곳곳 말 없는 발자국은 보이나 정녕 소는 눈에 띄지 않네 눈에 띄는 건 부러진 발목이거나 떼어버린 꼬리뿐이네 발목만이 서걱서걱 발자국 남기고 꼬리만이 헤프게 울어대네 울음 따라가다 버리고 싶은 마음만 길바닥에 뒤엉켜 있네 자꾸만 채찍질 같은 읍소를 하고 있네 담장 위로 날아가는 뿔을 보네 뿔만 보이네 뿔만 보네 소들은 모두 그림 속에 들어가 나오질 않네 그림 속에서 퇴색하는 흔적만 겨우 남긴 벽이 되었네 결코 울지 않네 침묵조차도 용납지 않네 김영준 시인(속초) / 봄은 늙은 나무 아래서부터 온다 늙은 나무의 기운이 하지로 몰려든 어느 새벽부터 스민다 나무 몸이 풀리면 벌레는 비집고 나설 틈을 찾는다 늙은 나무는 틈이 많다 틈틈이 소리를 .. 2023. 5. 28.
최문자 시인 / 꽃밭 외 1편 최문자 시인 / 꽃밭 한 밤중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누가 사라지는 법을 가르쳤지? 꽃밭의 꽃들은 다 어디 갔지? 꽃의 가슴에서 불쑥 튀어나오던 눈물 중에 내가 쓴 시 중에 생생한 혈관 몇 줄 살아있는가 핏줄도 살점도 파동도 바싹 마른 짐승 한 마리처럼 꽃밭이 없어진 곳 간절함이 없어진 곳 낯선 곳에 오래 서있게 되었네 내가 더 없어진 더 흐려진 무음 같은 곳에 내가 아닌 것들은 꽃이 아닌 것들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 아픈 곳이 달라서 색깔이 다른 꽃들이 세상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포옹하고 있는 동안 내 꽃 한 송이 들어있는 거기 있던 꽃밭 꽃 없어지고 나 없어지고 그 밭은 어디 가 있는가 계간 『계간문예』 2023년 봄호 발표 최문자 시인 /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 산다는 건 격렬한 것 몇 계단 내려와 두리번.. 2023. 5. 28.
한혜영 시인 / 여자 외 3편 한혜영 시인 / 여자 간밤 짙은 살 냄새를 가랑가랑 끌고 와서 물을 긷는 버들 뒤로 아쉬운 듯 밤이 가네 여자여! 푸르게 출렁댔을 젊은 몸의 그 體位여 저 버들에 세를 들면 물 한 동이 얻을 건가 밀폐된 방 어둠 속에 잠만 자는 늙은 사랑 몸 활활 뜨겁던 밤을 잃고 적막하네 내 여자는 한혜영 시인 / 목련 방금 숨거둔 이의 가슴 여며준 듯싶은 손! 저 희디흰 손앞으로 이끌려가 이승에 더럽힌 이마 위에 종부성사를 받고 싶네 한혜영 시인 / 징검다리 건널 때면 토끼처럼 사뿐사뿐 반만 디뎌 건너봐요. 실개천 물소리는 흘러내린 풍금소리 물 젖은/ 조약돌 하나 반짝 눈을 뜹니다. 물빛이 흔들릴라 맘 조리며 건너가요. 말갛게 잠긴 하늘 곱게 씻긴 모래알들 생각은 여울진 물살 산빛 씻겨 갑니다. 송사리 떼 흩어질라 .. 2023. 5. 28.
최병호 시인 / 비의 음계 외 4편 최병호 시인 / 비의 음계 그녀는 키 작은 단풍나무숲 아래서 가을비를 피했다 가을이라는 발음처럼 성긴 가좌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두 줄로 길게 이어진 숲 그녀가 음악실에서 오르간 건반을 치듯 장조에서 단조로 옥타브를 달리하며 차례로 구르는 빗방울들 작은 소리에 더 크게 흔들릴 줄 알았던 것처럼 보슬비에도 그녀의 어깨는 더 좁아졌다 그녀의 어깨 위로 긴 생머리 위로 틱 톡 한 방울씩 건네는 실내악 같은 리듬들은 아침이라 울림이 더 커진다 작은 것들은 미풍에도 크게 흔들릴 줄 안다 그녀는 이번 가을의 변주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비가 내리는 동안 운동장에서 야영 준비는 시작됐다 그녀는 단풍나무 우산을 쓰고 운동장으로 건너갔다 담장 옆구리에는 가을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다 최병호 시인 / 습관은 발톱이 된다 대화.. 2023. 5. 28.
이길옥 시인 / 비싼 외출 외 2편 이길옥 시인 / 비싼 외출 실로 오랜만에 집사람이 코 먹은 소리로 외출을 권한다. 꿍꿍이속을 훤히 들여다보고도 뜻밖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뜬 기분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S 백화점 5층 아내의 눈에서 번쩍 섬광이 인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기회를 노렸음이 분명하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옷을 골라 흥정을 끝내고 내 눈치에 염치를 끼워 넣는다. 그러면 그렇지. 옷을 사준 대가로 얻어먹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신경에 화를 꽂는다. 이길옥 시인 / 꽃웃음으로 살다 ​ ​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무료하다고 여겨질 때 그럴 때 다 비우고 꽃 앞에 서보자. ​ 길가의 잡풀이 피워낸 볼품없는 꽃이라도 좋고 기형으로 일그러진 꽃이라도 상관없이 다 비우고 꽃에게 다가가 보자. ​ 거기에 닿으면 거기에 닿아 녹아들면 .. 2023. 5. 28.
임동윤 시인 / 어떤 삶의 방정식 외 2편 임동윤 시인 / 어떤 삶의 방정식 민물과 짠물이 몸을 섞는 교각 밑에서 사내는 인양되었다 죽어서도 손잡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듯 핏기 없는 한쪽 팔이 거적 밖으로 뭉툭 튀어나와 있었다 아마 사내는 다리 난간에서 훌쩍 몸을 날렸을 것이다 그리곤 오래 용궁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 이 강기슭에 정박했을 것이다 급류에 휩쓸리면서도 퉁퉁 불은 발을 감싼 그의 구두는 궤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만월처럼 부풀어 오른 배는 금세 터질 듯이 탱탱해져 있었고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반쯤 벌어진 입은 이끼와 물땅땅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침내 세상의 꼬리표를 잘라낸 사내 유서 한 장 주머니에 남아있지 않았다 길고도 먼 여정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다만 힘든 세상을 떠돌았노라고 부릅뜬 그의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사이렌을 .. 2023. 5. 28.
황정산 시인 / 압도 황정산 시인 / 압도 섬 이름은 아닌 적이 있어야 존재하는 형체 없이 납작한 그래서 섬이기도 한 모두가 듣고 있으나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앞은 없고 뒤만 있어 하지 못하고 당하는 이 말이 튀어나온 날 만화처럼 내린 눈이 숲을 덮고 막장인 웹툰 안에서 한 남자가 압도적인 힘으로 반짝이는 이마를 벽에 찧는다 박힌 압정 하나 계간 『시와 징후』 2023년 봄호(창간호) 발표 황정산(黃貞産) 시인, 문학평론가 1958년 목포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및 同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94년 《창작과 비평》으로 평론활동 시작. 2001년 《현대시문학》으로 시창작 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 표현》으로 시 등단. 저서로는 『작가론 김수영 총서』,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 등이 있음... 2023. 5. 28.
고경숙 시인 / 폐광을 거닐다 외 6편 고경숙 시인 / 폐광을 거닐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각광을 받았다 빛나는 것들을 위해 주변은 어두워야 했고 시간은 볼모가 되었다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삼족오의 후예는 권위의 상징으로 땅끝마을 갯벌을 뒤지던 초로의 아낙은 언약과 보은으로 이 빛나는 붙이를 지녔으리라 어둠을 채굴하면 빛이 되고 빛을 채굴하면 권력이 되는 종속의 관계 폐기의 수순을 밟는 순간부터 광산은 한낱 동굴이 된다 은밀하고 습한 곳은 쥔 자와 굴屈한 자가 알아서 구분 돼 굴한 자는 그곳에서 저항의 죽창을 깎고 쥔 자는 은밀한 학살의 장소로 썼다 한 발짝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영광과 오욕을 지나오며 역사책 어느 구석에도 없는 잡초투성이 폐광 입구에 우연히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 서늘하게도, 폐광은 사람의 한 생과 닮.. 2023. 5. 28.
신진 시인 / 호숫가에서 외 2편 신진 시인 / 호숫가에서 어둠을 기다렸다가 한 치씩 더 흔들거리는 달빛을 따라 어둠을 기다렸다가 한 걸음씩 따로 자리를 내는 백양나무 숲을 따라 호숫가에 서면 돌아가기 싫구나. 성냥을 그으면 수면 위에 펼쳐지는 마을의 잔치 여기저기 불꽃 올리는 의식의 끝마을 내 어린날의 나팔소리는 저 어느 자리 무슨 빛의 등(燈)으로 매달렸기에 상기도 고운 노래 불러대는가? 다시 불 켜면 솟을대문 사이로 초롱 들고 얼굴 내미는 소년. 아이야 아이야, 할 말이 있다. 문 열어라. 나도 어둠을 기다렸다가 한 치씩 더 흔들리고 싶다. 흔들림이고 싶다. 흔들림이다, 나는. 날이 새자 호숫가에 허기진 들짐승 하나 소리도 없이 짖고 있다. 이젠, 먹이를 찾아 돌아가야 한다. 신진 시인 / 낙서 삼각형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낙.. 2023.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