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여종하 시인 / 사강 지나며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19. 8. 5. 05:00

여종하 시인 / 사강 지나며

 

 

  다시 봄이 오고 도지는 그리움이 사강 지난다.

  제 열병의 힘으로도 닫힌 하늘을 이탈하지 못하는 해는

  슬픔의 반원만을 허공에 태우며 지우고,

  삶의 외곽도로 굽어드는 길

  쥐불 그슬린 들판 너머 불어오는

  소금바람이 덫난 상처를 헤집는다.

 

  겨우내 사람을 피하고 피한다는 것이

  변두리 골방 소금창고에 홀로 갇힌 채

  썩어도 썩지 못하는 통증을 붙안고

  뒹굴고 뒹굴었다, 목숨이여

  목숨은 그리움의 집인가 쓰라린 감옥인가

  소금무덤인가 내가 버린 아니 나를 버린 당신인가

  볼모의 생인가

  물먹은 소금처럼, 낯선 마을 어귀를 빠져나가는

  마음은 정처 찾아 다시 헤매이고

 

  물끄러미 염전을 들여다본다.

  가두어진 물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버리고 버리며

  업장을 녹여내는 일, 그리하여

  다시 생성하는 물속의 빛 소금이여

  두근거리며 숨 쉬는 숨이여 길이여

 

  길이 내 안에 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길 찾아 길 떠나던

  몸이 큰 환란이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빈 수차가 돌고 있는, 염전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를 쓸어 모으자

  손안에 잡히는 한 움큼의 소금으로

  말 못할 것들의 타는 가슴을 문지르며

  다시 길 떠나는 길,

 

  그리움이 도질 때마다

  새로운 만남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버리고 버림을 위하여

  터덜터덜 발걸음을 풀어놓는

  마음 가닿는 곳ㅡ 양수의 바다를 향하는,

  길이 마음을 닮았구나.

  어느새 사위는 어두워지고 가슴으로

  고‧집‧멸‧도‧고‧집‧멸‧도

  소금별이 뜨는

 

시집 『강가강에 울다』(현대시 시인선. 2013) 중에서

 

 


 

 

여종하 시인 / 강가강에 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낯설고 먼 곳으로 두려움처럼 떠나왔던가,

  내가 그대여라고 부르며 손 내밀거나

  머물렀던 자리마다 악취로 썩어갔던가

  내가 병(病)이고 독(毒)이었던가

  그러나 다시 연민이여,라고 부르면

  문드러져 툭 떨어진 손가락이거나

  발가락을 뒤에 남기고

  붙잡는 이 아무도 없던 세상과의 지독한 결별을 떠올리며

  죽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떠나왔던가

  죽음보다 멀리 혹은 죽음 언저리

  저물어가는 강가강(江)가를 배회하는 저 개들

  입가에 피를 묻힌 저 비루먹은 개가

  나였던가, 저 눈빛 속의 나

  죽음보다 깊은 상처의 우울은 광기와 분열을 지나

  내가 낳은 아이 또한 길 위에 버려두고

  망 연 자 실 넋 나간 날들을 지나, 낯선 길 위에서의 잠

  다시 돌아가 몸 누일 집은 간 곳 없고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서성이는 개,

  다 버리고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시(詩)마저 간 곳 없는 낯선 길 위에서 독한 쓸쓸함의 허기는

  이빨을 드러내고 내 살점을 내가 뜯어먹으며

  내 뼈다귀를 입에 문 채

  문득, 저물어가는 강가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

  나도 저들처럼 강가강에 죄 씻듯 나를 씻으면 정화될 수 있을까

  죽음을 마시고 새로 몸을 얻는 몸이 될 수 있을까

  모독처럼 문드러지기만 하는 세월의 문둥병도 다 나아

  늦었지만 우리 화해하자며 새로 시작하자며 내가 먼저

  세상에 반듯한 손 내밀 수 있을까,

  도무지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나는

  배낭 속의 해골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두워진 강가강 위로 무슨 알지 못할 눈물 같은 그리움이

  한 점 꽃등(燈)으로 흐르고

 

*강가강: 갠지스 강

 

시집 『강가강에 울다』(현대시 시인선. 2013) 중에서

 

 


 

여종하 시인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강가강에 울다』(현대시 시인선, 2013)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