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함태숙 시인 / 내가 걷는 땅

파스칼바이런 2022. 10. 9. 05:00

함태숙 시인 / 내가 걷는 땅

 

 

저는 지나가는 옵저버이겠으나 이 땅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신들이 즐겨 입술을 대는 맹세에 차오르는 두 개의 떨림을 기도하는 양손을

기도하는 양손을 모으듯이 밑으로 길게 흐르는 원추형 몸을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환영이여 석영처럼 각이 져 반짝이는 지상의 가장 나쁜 쪽으로 건조한 추상의 고원위로 누추한 오두막과 다정한 찻잔과 그리고

낮은 음역대에서 길들이는 땅 속의 구름

 

빛마다 닿는 다른 면적에서 각기 다른 맛을 지닌 채로 시간은 저마다의 고유함을 익히고 정오의 긴 묵상이 순례의 행렬을 늘이는 공중의 땅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는 지나가는 옵저버

먼 곳의 태양을 등지고 어루만지면 빛과 그림자, 손가락 틈새로 당신의 빰을 만지던 그 감촉이 다시 당신을 되살리고 잎들을 꽃들을 꿈꾸는 잠의 수면은 크고 붉은 연꽃을 올리고 저는 안심하고 당신의 가장 나쁜 쪽으로 부는 바람

 

가장 겸허하고 견고한 음정 하나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에

신들은 숨결을 보태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우주 끝까지 늘이면

수조처럼 출렁이는, 사랑을 응축하면 육체가 되는 맑고 빛나는 것들을

당신은 가집니다 우리의 다만 할 일은 진리를 다채롭게 하는 일

 

방랑자여, 당신을 떠나는 일이

당신을 가슴에 들여다 놓은 일이란 것을 알겠습니다

 

웹진 시인광장20225월호 발표

 

 


 

함태숙 시인

1969년 강릉에서 출생. 중앙대 심리학과, 대학원 임상심리학 전공. 2002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한국문연, 2017)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시인동네, 2018)가 있음. 2019년 서울시 문예진흥기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