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고은진주 시인 / 잠의 맨살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13. 05:00

고은진주 시인 / 잠의 맨살

 

 

여자는 아름답고

잠은 더 아름답다

 

졸음을 휘감고 회전하는 회오리 잠

 

꾸벅꾸벅 이외엔 진술할 것이 없다는 듯

수액 공급하는

줄 장미 넝쿨인 듯

반쪽짜리 꿈이 진실하게 젖는다

 

눈꺼풀 뒤척일 때마다 이쪽 잠에서

저쪽 바람으로 뒤집히는 매미울음

 

몇 사람의 잘 여문 안부도

잠의 틈 비집고 나오려는

따뜻한 오줌도 아직 멀기만 한데

 

원격 제어된 졸음 속 몽유도원에 들었나 보다

벌어진 다리에서 때 아닌 선풍이 불고,

 

쌔근쌔근 잠을 감는 것일까

풀고 있는 것일까

 

홀수로 뒤척이다 짝수가 되는 어디쯤이 잠 깨는 지점인데

 

오수의 짧은 바늘 숨겨놓은 긴긴밤

핏방울 한 송이

따끔, 하게 핀 것인지

 

화들짝 튀어나온 침으로

몽환의 눈꺼풀 비빈다

 

 


 

 

고은진주 시인 / 애인처럼 순두부

 

 

몽글몽글 뭉쳐지기는 하겠지만

굳어지지 않겠다, 는 확고한 내용이다

 

간수하겠다는 뜻이다

 

순순한 콩물에

밀물 들듯 뭉쳐지는 모양

이제야 간을 만났다는 환호성이다

 

보드라운 한 입맛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말랑하면서도 울렁거리는

풍랑이 건네준

믿지 못할 수심이다, 순두부 한 숟가락

양념장 얹어 푹 퍼먹으면

울돌목 소용돌이와 달의 재잘거림

머리 끄덕이며 알 수 있다

 

조목조목 씹으면 저 먼 빙하 맛이 난다

 

굳이 숟가락 필요 없이

훌훌 들이마셔도

아무런 뒤탈 없는 두부들 세계에서

순하디순한 애인 같아 보여도

모 안에 엉키거나 엉기지 않으려는

순두부, 연한 꿍꿍이가 말캉말캉

살갑다

 

 


 

고은진주 시인

1967년 전남 무안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201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와,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등단. 〈5·18문학상〉 신인상과 〈여수해양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6시 내 고향'이라는 평일 저녁 장수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 시집 「아슬하게 맹목적인 나날」, 경기문화재단 경기작가 출간 분야 기금(2021년) 수혜.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신동엽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