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박이영 시인 / 해운대 동백꽃 외 3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20. 05:00

박이영 시인 / 해운대 동백꽃

 

 

툭,

던지는 그 말이 서러워

큰 눈에 돋는 물방울

파도의 건반이 되어주던

붉은 생채기

 

말을 아꼈다

 

말이 피운 꽃

쇄골이 예쁘다는 것 말고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문디 가시나

그대로도 좋으니까

그자그자, 사랑한다는 말

 

네가 보고 싶어

해운대 붉은 언덕에 핀,

 

월간 『시See』 2022년 2월호 발표

 

 


 

 

박이영 시인 / 불면을 가진 백야의 가설로부터 출발한다

 

 

진화하는 눈이에요

달라진 날의 언어를 보충하기 위해, 피어싱된 웃음이 자라고 있어요

어느 날은 헐렁히 풍경으로 서 있을게요 당신의 눈망울로,

 

간간, 거꾸로 자라는 욕망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생각이

꿈보다 앞서는 날은 하얗게 백야를 읽거든요 헛걸음의 적립으로 야생이 되어가는 불면을 공탁하는 거죠

 

방울방울 눈물을 가질 수 있어요 혼자 짖는 고요로,

그런 날은 주저리주저리 카시오페아를 폭식했어요 외투는 한동안 꼼짝하지 못하고 게이지가 다른 날들의 방정식을 풀어 놓았어요 까맣게,

 

바닥에서 바닥으로 두 발이 꿈속에서도 중력을 써내려가요 유쾌한 점자들이 솟아 목청껏 신분증을 내밀고 있네요

 

 


 

 

박이영 시인 / 잉여의 꽃잎으로 해가

 

 

함박눈을 접어두고

달맞이꽃을 그리는 그녀

하늘의 안쪽까지 걸어 심지어

그 너머로 이르며

아픈 무릎 발코니에 세운다

동쪽을 터치하면

질량이 너무 가벼울까

풍경소리 그냥 날아갈까

눌러 담은

이 커다란 캔버스의 거리는

액자의 틀을 넘어서

밤새 걸어온 체취로 컴컴하다

 

무관하게 보는 것은

말하는 것에 존재하지 않고

 

무한이 매달린 동쪽으로

불 켜진 방 하나를

달맞이꽃 셰어하우스로 놓아도 좋을까

 

계간 『문예운동-』 2022년 봄표

 

 


 

 

박이영 시인 / 폭설이 내리는 여름의 페이지에서

석림*을 만나다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석림의 시간을 쇼핑한다 그의 문학관에서 그는 무소의 뿔로 남았다 휴일을 적립한 무수한 발들이 오고가고. 누군가 별이 되기 위해 훔쳐갔던 동엽의 시집, 그 시집이 돌아오고 돌아온 이미지들로 석림은 공백을 유지하고 ……껍데기가 없는 오늘은 나의 기호에 답한다 큰 세상 앞에서 큰 사람의 이름을 빌려 조금 특별한 하루가 가고 있다고 설레발을 친다. 폭설은 서림의 청춘이라 적고 7월의 원고지에 무한하다 하늘을 보기 위해 찢어야 했던 천둥의 울음을 어쩌지 못하고 전등아래 되새김질되는 폭설, 현재진행형이다

 

*故 신동엽 시인의 호

 

월간 『시See』 2021년 8월호 발표

 

 


 

박이영 시인

2016년《예술가》로 등단.  중앙대 예술대학원 창작전문가 과정 수료.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휴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