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영 시인 / 해운대 동백꽃 외 3편
박이영 시인 / 해운대 동백꽃
툭, 던지는 그 말이 서러워 큰 눈에 돋는 물방울 파도의 건반이 되어주던 붉은 생채기
말을 아꼈다
말이 피운 꽃 쇄골이 예쁘다는 것 말고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문디 가시나 그대로도 좋으니까 그자그자, 사랑한다는 말
네가 보고 싶어 해운대 붉은 언덕에 핀,
월간 『시See』 2022년 2월호 발표
박이영 시인 / 불면을 가진 백야의 가설로부터 출발한다
진화하는 눈이에요 달라진 날의 언어를 보충하기 위해, 피어싱된 웃음이 자라고 있어요 어느 날은 헐렁히 풍경으로 서 있을게요 당신의 눈망울로,
간간, 거꾸로 자라는 욕망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생각이 꿈보다 앞서는 날은 하얗게 백야를 읽거든요 헛걸음의 적립으로 야생이 되어가는 불면을 공탁하는 거죠
방울방울 눈물을 가질 수 있어요 혼자 짖는 고요로, 그런 날은 주저리주저리 카시오페아를 폭식했어요 외투는 한동안 꼼짝하지 못하고 게이지가 다른 날들의 방정식을 풀어 놓았어요 까맣게,
바닥에서 바닥으로 두 발이 꿈속에서도 중력을 써내려가요 유쾌한 점자들이 솟아 목청껏 신분증을 내밀고 있네요
박이영 시인 / 잉여의 꽃잎으로 해가
함박눈을 접어두고 달맞이꽃을 그리는 그녀 하늘의 안쪽까지 걸어 심지어 그 너머로 이르며 아픈 무릎 발코니에 세운다 동쪽을 터치하면 질량이 너무 가벼울까 풍경소리 그냥 날아갈까 눌러 담은 이 커다란 캔버스의 거리는 액자의 틀을 넘어서 밤새 걸어온 체취로 컴컴하다
무관하게 보는 것은 말하는 것에 존재하지 않고
무한이 매달린 동쪽으로 불 켜진 방 하나를 달맞이꽃 셰어하우스로 놓아도 좋을까
계간 『문예운동-』 2022년 봄표
박이영 시인 / 폭설이 내리는 여름의 페이지에서 석림*을 만나다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석림의 시간을 쇼핑한다 그의 문학관에서 그는 무소의 뿔로 남았다 휴일을 적립한 무수한 발들이 오고가고. 누군가 별이 되기 위해 훔쳐갔던 동엽의 시집, 그 시집이 돌아오고 돌아온 이미지들로 석림은 공백을 유지하고 ……껍데기가 없는 오늘은 나의 기호에 답한다 큰 세상 앞에서 큰 사람의 이름을 빌려 조금 특별한 하루가 가고 있다고 설레발을 친다. 폭설은 서림의 청춘이라 적고 7월의 원고지에 무한하다 하늘을 보기 위해 찢어야 했던 천둥의 울음을 어쩌지 못하고 전등아래 되새김질되는 폭설, 현재진행형이다
*故 신동엽 시인의 호
월간 『시See』 2021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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