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권옥희 시인 / 숲의 낙인
파스칼바이런
2022. 10. 28. 05:00
권옥희 시인 / 숲의 낙인
바람을 지고 사는 오래된 숲은 늘 젖어있다
누구든 기대어 먹고살라고 문도 열어놓는다
두터운 각질 몇 겹으로 두른 나뭇등걸에 소복하게 붙어사는 초록이끼는 오래된 질문이다
나무가 겪었을 숱한 답변들이 푸르게 녹아있고
언제나 넉넉하고 조용했던 그늘의 순리를 바람은 따라가지 못 한다
당신이 머물다 간 자리도 내 안에서 그렇게 영역을 넓혀갔다 쓸모없이 뿌리째 뽑혀간 인연들
접촉할 수 없는 뿌리의 경계를 필두로 새로운 무늬가 생길 때 마다 당신도 햇살처럼 그리움의 낙인을 찍어주었다
숲을 나무가 껴안는 것일까, 나무를 황금 같은 날들이 껴안는 것일까
팔베개처럼 편안하게 이제 당신의 세월을 누이고 싶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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