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임영조 시인 / 삼월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29. 05:00

임영조 시인 / 삼월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 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 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 본다

 

 


 

 

임영조 시인 / 덩굴장미

 

 

오월 한낮 햇볕 아래

나른한 골목길 인적 뜸하다

누가 사는 집일까?

화사한 웃음소리 담을 넘는다

새빨간 립스틱 진하게 칠한

저 여자들 오늘이 곗날인가?

모처럼 하나같이 화색이 돈다

낯술 한잔 걸친 듯 농염한 입술

귀 빌려주면 무슨 말 할까?

온몸이 지레 후끈거린다

못 본 척 그냥 걷는다, 이봐 !

새파란 덩굴손이 어깨 툭 친다

왜요? 돌아다보니, 오호호......

선혈이 낭자한 드라큐라

화려한 염문처럼 뒤따라온다

사방에 짜한 매혹적인 저 몸내

그 여자 입이 참 얇다

색이 너무 진하면 담을 넘듯

가시울 쳐도 새는 화냥끼

슬쩍 한 송이 꺾어?

그 여자 몸이 온통 가시다!

 

 


 

임영조(任永祚) 시인(1945년~2003년)

1945년 충남 보령 출생. 중학교 시절 지리교사로 부임한 신동엽 시인을 만나 문학공부를 시작해 서라벌예대를 거쳐 1970년 「월간 문학」 신인상과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잇따라 당선되며 등단.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 [그림자를 지우며] [갈대는 배후가 없다] 등. 시선집 [흔들리는 보리밭] 1989 제23회 잡지언론상 수상. 1991 제1회 서라벌문학상 수상.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5년도 제9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2003년 5얼 28일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