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선 시인 / 낭비 외 1편
조말선 시인 / 낭비
재스민이 향기를 낭비하고 있었다 구멍은 낭비벽이 심했다 재스민은 나날이 새 구멍이 생겼다 재스민은 나날이 향기를 낭비하고 있었다 <재스민>에서 향기가 피어올랐다 향기가 나를 친친 감아올랐다 구멍의 낭비벽은 너무 먹어치운다거나 너무 뱉어댄다는 것이다 모종컵이 낭비하는 모종들 꽃병이 낭비하는 질병들 음부들이 낭비하는 통정 구멍을 막으면 낭비벽이 사라진다! 지갑을 닫는 데는 딱 일초가 걸리고 음부를 닫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재스민>이 계속 향기를 낭비하고 있었다.
조말선 시인 / 물방울
집을 떠나서 처음으로 이룬 것이 마지막 말인 것이다 듣는 이 없이 부르짖은 감탄사인 것이다 절벽 위에서 엄마, 라고 소리쳤는데 처음으로 이루려고 했던 것이 누군가의 자식이었음을 보란 듯이 증명해낸 것이다 엄마, 라는 말이 물주머니처럼 터지려는 것이다 소금기를 쫙 빼고 눈물 이상으로 극적인 것이다 세상의 엄마들은 모두 얼굴이 다른데 비슷비슷한 것이다 슬픔을 꼭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앞서간 사람이 나라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잡을 테면 기어이 뛰어내린다는 것이다 꼬깃꼬깃 주름을 집어넣은 엄마, 는 알고 보니 둥근 것이다 꽤 반짝이는 것이다 결국에는 둥근 육체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봉착한 난관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빛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마지막으로 내민 손목이 있는 것이다 신이 있다면 이 손목을 놓아 주소서, 기도하는 자세를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보니 가벼워지고 가벼워졌는데 참을 수 없이 무거운 것이다 찰나일 뿐인데 엄마, 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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