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송시월 시인 / 11월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16. 05:00

송시월 시인 / 11월

 

 

11월 엷은 햇살이 미끄러진다.

미끄러진 것들 내 손등을 툭 치며 금빛을 쏟아낸다.

눈을 감자 나비들 날다가 이내 사라진다.

백병원 영안실 주위를 서성이는

햇빛 속으로 영락교회와 명동성당이

비스듬히 기울고.

그 중간의 메타세콰이어 기침을 하며

눈부시게 부서지고.

남산 3호 터널을 빠져나온 자동차들 을지로로 청계천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워져가고.

체크무늬 바바리를 입은 내가 가로수 사이로

바삭바삭 스며들고.

11월이 흔들흔들 가라앉고.

 

 


 

 

송시월 시인 / 4월의 부호들

 

 

1

황사바람에 날리는 벚꽃잎들

안약 히아레인 눈물방울에 젖은 붉은 눈동자,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2

눈을 감으면 고흥 반도 내 유년의 방죽

지평선을 날으는 갈매기의 날개가 가렵고 썰물의 갯벌을 기는

꽃게의 빨간 발이 가렵다.

튀는 망둥어의 꼬리가 가렵다.

 

3

한 치쯤 자란 고만고만한 모싹들이 서로의 등을 긁는

교동면 상황리 논바닥이 천연기념물 205호

저어새의 질척한 울음소리를 긁는다.

등량만에서 산지 직송되어온 염포탕집 냄비 속

오돌토돌 낙지의 발이 내 눈을 긁는다.

떠도는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송시월 시인

전남 고흥에서 출생. 1997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12 시간의 성장』(시문학사, 2005)과 『B자 낙인』(예술가, 2014)이 있음. 제 1회 푸른 시학상 수상. 현재 계간 『시향』 편집위원. 시류동인과 하이퍼시 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