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령 시인 / 청춘 외 1편
장무령 시인 / 청춘
폼으로 책을 읽고 죽음을 꿈꾸고 폼으로 이별을 하고 눈물을 참다 이십대를 보내고 삼십대를 맞이하다 그리고 전화를 기다린다 전화가 오면 온몸을 다해 비굴한 몸짓으로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구걸할 것이다 마하 삼의 속력으로 튀어오르는 우주선에 갇혀 유배되기 직전의 나는, 그녀가 기다릴 다음 역에 내린다 황금빛 쌍권총을 뽑아 아직 남은 총알들을 모두 탕진하곤 그녀의 빛을 잃어버린다 어둠; 가끔 운석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정수리에 우주의 차가운 공기가 스미고 빠르게 흐르던 기억이 얼어붙는다 오랜 후. 천체 망원경 속 낯선 소년의 눈동자는 우주 끝 얼어붙은 기억에 대해 짧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장무령 시인 / 사랑
야외 촬영을 나온 신부의 눈 속으로 황사가 파고든다 남자가 신부의 드레스 자락을 밟고 멈칫한다 눈물을 훔친 신부가 개나라꽃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간신히 미소를 짓는다 찰칵, 카메라 앵글이 개나리꽃 위 미소만을 자른다 카메라가 미소 뒤에 남자의 상반신을 붙인다 연미복을 입힌 남자의 상반신이 황사바람에 구겨진다 구겨진 상반신이 필름 통에 버려진다 필름을 갈아 끼운 카메라가 빳빳한 새 상반신을 신부의 미소 뒤에 붙인다 왼쪽 어깨를 낮춰 미소 쪽으로 상반신이 최대한 기울게 만든다 일제히 목을 꺾는 개나리꽃들 찰칵, 다정한 모습으로 미소와 상반신이 잘린다 잘려 벽에 걸린 신혼 부부 사진 속 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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