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일 시인 / 콩잎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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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일 시인 / 콩잎
성한 콩잎 옆에 벌레에 파먹힌 콩잎파리 하나 총상처럼 찢겨진 잎의 구멍 속으로 햇빛들이 계속 빠져나가지 상처의 둘레를 알뜰히 핥아먹고 살다가 지금은 먼저 구름이거나 꽃이 되었을지 모를 단명한 목숨들의 추억들로 가득하지 보드랍고 가벼운 잎의 톱날에 내 검지 마디 아찔하게 베이는 순간, 달려드는 벌레에게 몸뚱어리 한 구석 내어 주는 것 더 넓은 자리로 인도하여 주는 것 아스라하게 스며드는 쓰라림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엷은 선홍색 피가 베인 마디를 적실 때 가슴으로 밀려드는 공허 같은 것이라는 것을, 나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으니 그것이 사는 길이었다고 애써 말하지 말라 그처럼 선명한 초록 나 본 적 없으니 그처럼 환하게 웃는 상처 본 적 없으니
박윤일 시인 / 구두, 발자국
아버지는, 소나 양이 벗어놓은, 구두를 팔았다.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햇빛의 무덤인, 단칸 방 다락은 구두창고, 밤새 독파 중이던,제삼세계문 학전집 행간들은, 말발굽들이 달그락달그락,절뚝 이며 지나 팔다 남은 말발굽들은, 다락에 차고 넘쳐서,부엌 으로, 옷장으로, 내책상 밑으로, 마구 헤집고 다녔 다. 나는 말발굽 소리를 머리에 이고, 잠이 들었고, 아버지는, 쓰라린 말발굽 신발을, 평생 벗지 못했 다. 영영, 녹슨 대문 앞 가지런히 놓인, 구두 한 켤 레가 되었다.
나는, 마구간을 벗어나게 되었지만, 좁은 시장 골목을 지날 때마다, 비닐에 덮인 채, 먼지를 피하 던 딱딱한 말발굽이, 야야, 어디가노, 다정하게 이름 부르며, 쫓아올 까봐,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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