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호 시인 / 비등점 위의 사랑 외 1편
전건호 시인 / 비등점 위의 사랑
휘발성 안개 자욱한 밤 불티처럼 어둠의 한복판을 질주하던 나는 이 별의 시한폭탄
담벼락에 그려진 낙서들이 수동형에서 능동형이 되도록 나를 버린 접속사들을 달래며 집착했다
나는 무중력의 궤도를 떠도는 떠돌이별
글자들이 지시하는 대로 행진을 하고 운명을 조망해주는 별빛을 따라 떠돌았으나 돌아보면 또 그 집 앞이었다
거미줄 같은 길들이 나를 가둘수록 휘발성 어둠 가득 찬 마음은 아직까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남긴 글자들에 조종되고 사육되었다
유일한 좌표란 어둠 속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자정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석유처럼 흥건한 어둠에 몸을 맡기다보면 그를 향해 흐르던 강물이 바람과 시간의 경계에서 하얗게 멀어져 갔다
내가 쓰다 버린 백만 개의 파지들이 구원의 나룻배처럼 흘러올 거 같았다
전건호 시인 / 피타고라스의 추억
풀리지 않는 방정식은 관계 속 절벽이 되었다
너를 단념하고 돌아선 갈림길
그리움을 접어야 했던 순간을 실선으로 이으니 도형 속 갇혀 있는 빛과 어둠이 몸을 포갠다
침묵의 꼭지점에 저녁별이 뜬다 1분만 더 기다렸더라면 조금만 더 쳐다보았더라면 한번만 더 고백했더라면 역삼각형은 정삼각형이 되었을까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바다 비는 내리고 결빙된 빗방울은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으로 물길을 낸다
일 인치만 더 팠더라면 옆으로 살짝만 비켜졌더라면 조금만 목소리 낮추었더라면 가시 끝 오월의 장미는 피었을까
손 한 번 더 내밀었어도 당신과 나 사이를 막아서던 파도의 꼭지점에 저녁별이 떴을까
- 시집 《꽃점을 치다》 2021. 도훈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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