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하 시인 / 포토그래피 외 1편
최지하 시인 / 포토그래피
네모가 나보다 먼저 생기기 시작했다 네모는 창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항상 바깥이 가득했다 바깥의 구도는 나무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는 사람과, 그 이후의 노인과 더 멀리 내리는 비, 그리고 그늘이 가까운 일요일만 있었다
침울한 사람과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11층에서 지하 주차장까지 함께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풍경으로부터 발각되지 않았으며, 비밀의 실체에 대해 생각했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때때로 새벽을 머리맡까지 끌어다가 그림자만 잘라내거나, 열심히 문을 잠갔다
잉크에 젖은 또 다른 안과, 종이의 바깥으로 쏟아지려던 계획을 바꿔버리는 것, 어쨌든 네모난 술병 같은 표정을 좀 더 비뚤어지게 재연하려는 것이다
-계간 《시산맥》 2019년 겨울호
최지하 시인 / 춘천처럼
슬픔은 대부분 후생성이다 불가능의 저편에서 태어나는 모의 같은 그것들 맨 처음이었을지 모를 입맞춤을 무사히 치르고 온 다음날 유리창에 피었던 춘천처럼 나를 인력引力하던 지루한 말들이 종이비행기를 접던 새벽 두 시마냥 엉금엉금 지나갔다
춘천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안개처럼 두껍게 발설해도 좋았다 표정을 내다버릴 때도 춘천을 이용하라고 일러주고 싶었지만 바라보는 쪽으로 짧아져 가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시작의 지점을 기억해 내는 사실도 어쩌면 그런 일
보살핌 없이 자랐던 이불 속의 발같이 뚜렷한 사실을 맞닥뜨려야 할 때도 춘천의 안개보다 먼저 태어난 후생이 따라와 있었다 너무 늦게 찾아온 어떤 일의 뒤에서부터 먼 주소를 향해 슬픈 비행을 시작하려는 물방울이거나 눈물의 이름이 춘천으로 불리는 동안 투명하지 않은 것을 향하여 전부를 걸어버린
이 불투명한 저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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