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송뽈깡 시인 / 호수 외 3편

파스칼바이런 2022. 12. 4. 05:00

송뽈깡 시인 / 호수

―자기의 눈물이 투명할 때 거울 속 자신이 보인다

 

 

짓는 표정 푹 적을 수 있는

 

손거울만 한 여백, 들기에 마음이란 잔은 무겁다.

 

찡그린 표정 퍼덕거리지 못하게 말려서

새털구름으로 던져버리고 나면

하늘은 묵음이 된다. 때문에 눈물이 난다.

수많은 흘림, 깊다. 하물며

우주가 그것을 마신다. 사랑은 마를 줄 아는 물.

 

이별은 그 옹색한 물결 모조리 발라낸 다음에야 바람에 이를 수 있고, 슬픔은 찍어댄 발자국들 하나도 남김없이 마셔버려야 그 후 물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먹는 마음과 그 배후의 관계인 것

바람과 물결이 서로를 비추다 반대로 돌아가 버리면

그 거꾸로 태엽 감아대고, 더불어

거꾸로 돌아가 버리면 그 반대로 태엽 감아대는 것

그리움이라는 띠를 머리에 질끈 둘렀다.

 

깊이 고인 손거울 곰곰이 들여다보는 얼굴 토르소,

 

어느 비망록의 몽타주인가.

 

-시집 『뽈깡주의자』(시산맥, 2022) 수록

 

 


 

 

송뽈깡 시인 / 안팎의 서書

 

 

아사바라! 묻는다.

모든 걸 낱낱 뒤집어 까발림으로 피우게 되는 것

무엇인가.

풀잎은

풀잎을 풀잎 밖에서 풀잎 안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바람은

바람을 바람 안에서 바람 밖으로 던져버리려 한다.

안은 꾹꾹 밟아 채워야 할 밖

―이기 때문이다.

밖은 탈탈 털어 뱉어내야 할 안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은 사랑을 사랑 안으로 몰아넣지 않았고

슬픔은 슬픔을 슬픔 밖으로 던져버리지 못했다.

슬퍼서 안이 밖을 확인한다.

사랑하므로 밖이 안을 확인한다.

그 순간

안을 탈탈 털어내어 밖

꽉꽉 채우기 위해 안에서 밖으로 도망친

나와,

밖을 탈탈 털어 안

다시 메우기 위해 밖에서 안으로 달아난

내가,

부는 바람과 세운 풀잎 경계에서 반드시 만나

말한다.

모든 걸 낱낱 뒤집어 까발림으로 피우게 되는 것,

꽃이다. 아사바라!

 

-시집 『뽈깡주의자』(시산맥, 2022)  수록

 

 


 

 

송뽈깡 시인 / 마지막으로 그해 6월 4일이 보내온 편지

 

 

내 그리움은, 떨어진 자기 그림자

껌딱지처럼 길바닥에 붙이고 가는 어떤 나무

 

뒤쫓다 문득 낯선 길 만나면 눈 깜박거려대는 것,

하물며 말 잘 듣지 않는 마음조차 끌며

굴러다니는 것, 그러다 이름도 푯말도 없는 숲

뭇 자락에 이르러 석양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자빠진 채로 심연이 불러주는

붉은 멍투성이 그대로 받아적는 것.

 

참으로 허튼 나이테

줄곧 저질러온 제멋대로에 대하여 중구난방

흔들다 자기도 중구난방 흔들려온 풀이

이젠 낮은 무용 한가운데에

옴스라니 몽근 한줄기 마음 세우려 한다.

그런데 풀잎 꽂아야 할 그림자가

너털웃음같이 가벼운 제 몸 하나 일으키지

못하므로 풀벌레가 운다.

 

나, 이것뿐인가.

 

잔잔한 글썽거림으로부터 온 별이

흐느껴댐 충분한 실핏줄의 숨소리 터득한 잎사귀

위에 올라서서 이지러지지 않는 촛불 넌지시

점등해줄 때 불현듯 맺힌 비망록이 쑥쑥

에인다. 차라리 실컷 반짝이게 이슬 쥐어짠다.

 

점점 쭈뼛한 것 별빛, 무선이다.

 

-시집 『뽈깡주의자』(시산맥, 2022) 수록

 

 


 

 

송뽈깡 시인 / 뽈깡주의자

 

 

   거기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 커다란 심장판막

   같은 페이지가 두근거림으로 울렁거린다.

 

호흡이 인다. 기탄잘리 술렁인다.

내재의 부재함 부재의 내재함

그 지상에 끼어들기

위해 별빛과 별빛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파도가 흐르는 바다 위를

한 달에 한 발짝씩 걸으며

섬은 노래 부른다.

바람은 행려의 양식.

구름은 여로를 위한 누더기.

저 한 척 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누가 승선해 있으며

어디로 항해해 가는 것인가.

글쎄다. 글쎄다.

최후의 정박지 찾아서

날마다 떠나고 날마다 돌아오는

갈매기들은

아마도 아마도 알 것이다.

먼발치에서 뇌까리다

독백의 입술 부르튼 갯바위.

세계는 세계인가.

그 물음의 길 쓰는 지느러미들.

 

   이 순간이라는 간절한 내재율이

   통痛으로 통通하는 세계 향한다.

 

물은 뼈가 없다. 그럼에도

자신을 화려하게 세워대는

물결에 대하여 바다는 왜

너그러이 다 받아주는 것인가.

한 질문 사육하는

아가미와 지느러미.

그 지극함 천명인 것인가.

마음이 결려온다.

아주 극심한 현기증

어깨에 파스처럼 붙이고

둥둥 떠다니는 쌍돛

갈매기 날개가 요동침으로 인해

비릿함의 조류가

멀미 해조음 게워낸다.

표류의 기슭이 깊어진다.

한껏 더해진 두려움의 수심은

무한 속으로 파내려가게 된다.

이 몹쓸 기우 무시

또 무시해야 하는 것인가.

눈이 퀭한 오디세이

항로가 주춤거리는 뱃머리

쥐어뜯는다. 돛대의 등줄기

잔뜩 휘청거린다.

고요한 사진 없구나.

요란한, 떠들썩한, 눈빛들.

나르시스의 행려와

깡말라가는 구름

행간은 바람 차지. 멀미하는

페이지 되어 파도가 자맥질한다.

 

   생각의 바닥 보기 위해 온갖 물음이

   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려 한다.

 

기탄잘리란 돛 달고 항해하는

고래라는 이름의 이방인.

입술 부르트게 한 노래의 과녁

바다는 독실하다.

거칠게 화려한

의뭉과 의뭉으로 덮쳐오는

폭풍에게 맞서기

위해 이는 모든 물결이

망망 울울창창 겁 없는

춤을 추게 한다.

보아라. 보아라.

깊은 자상自傷에서 태어난 저

거침없는 용수철 마음.

부재 부재 그 내재율

튀어 오르는 고백

파도소리 보이지 않는가.

보고 알아채야 살아남는다.

영민한 눈빛 찾다 찾다

죽게 된 눈동자가 부활한다.

죽었다 살아난

내장이 보이는 투명 물고기

저 달,

덩굴줄기의 달빛

잘라 밧줄로 쓴다. 새우는

그것으로

망망대해를 비끄러매둔다.

나르시스 오디세이의 갑판

뱃머리에서 작살의 눈빛 밝혀

고래를 겨눠라, 등불.

 

   일게 된 수심의 가쁜 진술 파도소리가

   웬 바람 타고 모조리 우화하려 한다.

 

밖의 밖 그 밖 항로 집착해대는

지느러미는

동행할 아가미 부른다.

간절한 것이다.

아비의 물에서 온 생존.

물결의 뼈 한 자루 낚기 위해

물에서 노는 어부.

진한 비린내 짙은 짠물 낚는

육신은 한 망의 그물.

그 일기는 한 편의 소해掃海.

가파른 멀미의 꼭대기에서

도금으로 빛나는 저 태양

거들떠보며 파도 선언,

바람이 분다. 갈피 못 잡는

절치부심 그 중심에 박힌 표류.

그로 인해 고장 난 자아도취.

그 배 가까스로 수선한 끝에

울려 퍼진다. 항해들의 찬가,

의식이 명료해진 조류.

끌려갈 방향 막 터득한 돛.

세계는 세계구나.

나는 통痛으로 통通하겠다.

상처는, 그 자리에 그물 던진다.

 

   파도가 북 친다. 지극히 독실한 섬

   잉태한 고래가 온몸으로 뛰어오른다.

 

-시집 『뽈깡주의자』(시산맥, 2022) 수록

 

 


 

송뽈깡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극작과 졸업. 2010년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 재개. 『뽈깡주의자』(2022) 등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