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숙 시인 / 몸이 기억하는 길 외 3편
한영숙 시인 / 몸이 기억하는 길
삼시세끼 밥 잘 먹고 뒷간 시원히 물 잘 내렸던 밥 한술 뜬다는 것 쾌변 본다는 것 아침이 오면 으레 저녁이 오고 저녁이 오면 별 왕관을 쓰고 꿀잠을 총괄하던.
톱니바퀴로 맞물린 낮밤들이 때론 이빨 깨지는 쇳소리를 낼 때도 있지만, 세월로 단단히 다져진 그 길은 그저 눈감고도 설렁설렁 가는 줄 알았다
갓난아기 조막손만 한 장기 하나 떼어낸 어느 날부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두컴컴한 저 앞 오지의 길
얼마나 돌고 돌아야 스키드마크 찍히지 않은 입구와 출구를 잘 찾을 수 있을까.
웹진 『시인광장』 2022년 8월호 발표
한영숙 시인 / 메자르
산 넘고 또 넘어 어귀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mezar 몇 기 눈에 들어온다. 그곳엔 삶과 죽음이 공존 하는 텃새 평화로이 지절대는 곳. 곧 낮이 밤 되고 밤이 낮 되는, 산 자와 더불어 한가로이 술래인척 제비뽑기 하는 터키의 소박한 영 혼들.
한영숙 시인 / 대화
퇴근 무렵 전철 안 출입문 쪽에 바짝 붙어 서서 조심조심 대화를 이어가는 그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입김이 창에 부딪혀 하얀 나비가 되어 올랐다 하얀 꽃이 피어 날아올랐다 겨울로 들어가는 초입 전동차 안은 계절을 잊은 꽃과 나비들로 봄인 양 따사로웠다
한영숙 시인 / 이조곰탕집
간밤에 똥밭으로 미끄러지는 꿈을 꿨더니 아침부터 입이 걸쭉한 사람들을 만났다. 수화기에다가 호 박구덩이 거름 퍼붓듯 줄줄이 퍼붓는다. 분토에 섞인 말들이 걸차게 뻗어나가고, 뜨끈한 속어들이 문장으로 선명하게 출력된다. 내 마음 속에는 한여름 욕설 잘 먹은 시커먼 잎들로 가득했다.
엄지손톱만한 욕설 숱하게 비운 빈속이 니글거린다. 하늘마저 텁텁한 황사다. 청양고춧가루 확 푼 곰탕 국 한 그릇 숨도 안 쉬고 단숨에 들이켰다.
우당탕- 낙하하는 俗語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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