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정원도 시인 / 초식 동물의 비애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2. 13. 05:00

정원도 시인 / 초식 동물의 비애

 

 

한 달이 멀다하고 닳은 칫솔을 바꾸니

일 년이 가도록 한 칫솔을 쓰는 노모가

무슨 칫솔을 시도 때도 없이 바꾸느냐고

그 돈 *남산 중 아들놈이 대느냐고 다그친다

 

치아에서 칼슘이 빠져나가는 나이라 그런지

소나 말이 여물 씹을 때 나는 소리가

음식을 씹는 내 이빨 사이에서 들려온다

어느덧 순한 소나 말이 되어가는 것이다

 

긴 창자를 감추느라 불어 오른 헛배로

버거운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초식동물에게서 나타나는 비겁한 후퇴가

몸에 배었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어머니의 체구는

사나운 맹수처럼 상체가 작달막하고

긴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며

사나운 송곳니가 발달되어 바느질실이나 어떤 매듭도

단호하게 끊어내며

누구에게도 지고는 못사는데

 

나는 누구에게도 이기고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천생 초식동물이다

 

*남산 중 아들놈: 어머니가 뜻도 모르며 쓰던 구전문자로, 경주 남산이 서민 불교로 흥하던 시절에 중이 가정까지 거느리고 돈을 벌던 것을 풍자한 것으로 보임.

 

 


 

 

정원도 시인 / 사람이 선해지는 속도

 

 

사람이 빨리 선(善)해지지 않는다고

포탄 터지는 굉음 피해 달아나는 새들아!

조급해하지 말라

 

지구가 몇 번의 생사를 거듭하고도

목숨이 아득해지는 때가 있으니

때로는 날개를 접고 서두르지 말 것

 

사람이 선해지는 속도는

심심한 꽃들이 종(種)을 바꾸는 때나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와 비례하는 것이니

 

 


 

정원도 시인

1959년 대구에서 출생. 대구공업고등학교 졸업. 1985년 《시인》誌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리운 흙』 『귀뚜라미 생포작전』 『마부』가 있음. (전)한국작가회의 감사, (전)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장, 분단시대동인으로 활동. 분단시대동인. 현재는 건설기계 관련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