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도 시인 / 초식 동물의 비애 외 1편
정원도 시인 / 초식 동물의 비애
한 달이 멀다하고 닳은 칫솔을 바꾸니 일 년이 가도록 한 칫솔을 쓰는 노모가 무슨 칫솔을 시도 때도 없이 바꾸느냐고 그 돈 *남산 중 아들놈이 대느냐고 다그친다
치아에서 칼슘이 빠져나가는 나이라 그런지 소나 말이 여물 씹을 때 나는 소리가 음식을 씹는 내 이빨 사이에서 들려온다 어느덧 순한 소나 말이 되어가는 것이다
긴 창자를 감추느라 불어 오른 헛배로 버거운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초식동물에게서 나타나는 비겁한 후퇴가 몸에 배었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어머니의 체구는 사나운 맹수처럼 상체가 작달막하고 긴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며 사나운 송곳니가 발달되어 바느질실이나 어떤 매듭도 단호하게 끊어내며 누구에게도 지고는 못사는데
나는 누구에게도 이기고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천생 초식동물이다
*남산 중 아들놈: 어머니가 뜻도 모르며 쓰던 구전문자로, 경주 남산이 서민 불교로 흥하던 시절에 중이 가정까지 거느리고 돈을 벌던 것을 풍자한 것으로 보임.
정원도 시인 / 사람이 선해지는 속도
사람이 빨리 선(善)해지지 않는다고 포탄 터지는 굉음 피해 달아나는 새들아! 조급해하지 말라
지구가 몇 번의 생사를 거듭하고도 목숨이 아득해지는 때가 있으니 때로는 날개를 접고 서두르지 말 것
사람이 선해지는 속도는 심심한 꽃들이 종(種)을 바꾸는 때나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와 비례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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