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태수 시인 / 유리창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2. 15. 05:00

이태수 시인 / 유리창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으면

새들이 날아들고 나무들이 다가선다

그러나 다가가고 날아가는 건

정작 내 마음일 따름이다

 

마음의 빈터에 새들을 부르고

나무들을 끌어당겨도 부질없는 일일까

 

유리창은 투명하고 견고한 벽이므로,

견고한 만큼 투명하고 투명한 만큼

견고한 유리창은

이쪽과 저쪽을 투명하고 견고하게

갈라놓고 말 것이 너무나 분명하므로,

 

하지만 오늘도 창가에 앉아

유리창 너머 풍진세상을 끌어당긴다

 

분할된 안팎을 아우르는 꿈에

안간힘으로 날개를 달아 본다

유리창 이쪽 마음의 빈터에 나무를 심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불러 모은다

 

 


 

 

이태수 시인 / 지나가고 떠나가고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도 지나가고

 

또 한해가 지나간다.

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

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

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

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

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

 

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

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

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

허공 깊숙이,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다.

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

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이태수(李太洙) 시인

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대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 속의 푸른 방』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  『그의 집은 둥글다』 『안동 시편』 『내 마음의 풍란』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회화나무 그늘』 등이 있음. 대구시문화상(문학)과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수상. 매일신문 논설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