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서안나 시인 / 어떤 울음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2. 31. 05:00

서안나 시인 / 어떤 울음

 

 

 마른, 밥, 알을 입에 문 여자가, 204호실에서, 죽은 쌀벌레처럼 웅크린 채, 발견, 되었다, 죽음의 내, 외부가 공개되었다. 쌀도, 가족도, 유서도, 없었다, 죽음의, 원, 인과 결, 과만 남았다, 수사시록에는 그녀의 몸에서, 감춰두었던 울음이, 벌레처럼 기어 나왔다고 쓰여 있다. 형사와, 의료진과, 앰뷸런스와, 동사무소의 직원이, 그녀를 죽음,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그녀가 이승에서, 단순하게, 떨어져나갔다, 이승의 반대편으로 앰뷸런스가, 떠나고, 형사와, 동사무소, 직원이, 가정식, 백반을 들며, 소주를, 마신다, 골목의 소음들을 한 모금에 꿀, 꺽, 삼킨다, 식당 주인이, 파, 닥, 파, 닥, 부채를, 부치고, 있다,

 

 


 

 

서안나 시인 / 슬픈 식욕

 

 

그녀는 조선족이라고 한다

얼굴만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말 한 마디로 출신 성분이

정확히 간파되고 만다

 

전국을 떠다니며 산다고 한다

잔뿌리 같은 열 손가락으로

허공이라도 움켜쥐고 싶다는 그녀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아도

아랫배가 왜 부풀어 오르는지

지퍼가 벌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슬픔을 배가 부르도록

먹어본 적도 있다 했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배를 채우는

슬픈 식욕의 힘으로

공중부양하는 것을 믿느냐고도 물어왔다

 

온몸 가득 바람을 불러들여

부레옥잠이 되고 싶다는 여자

빚을 갚기 전에

땅에 발붙일 수 없노라고

보랏빛 눈물 흘리며

천형을 받고 있다 말하는 여자

 

허공에서 지느러미를 퍼덕이며

배가 터지도록 세상의 온기를 퍼먹고 있는

식욕이 슬픈 풍어(風魚) 한 마리

 

 


 

서안나(徐安那) 시인

1965년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 1991년 《제주한라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가작으로 당선. 저서로는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와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이 있음. 현재  <서쪽> 동인이며 한양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