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원 시인 / 모두의 밖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2. 31. 05:00

이원 시인 / 모두의 밖

 

 

의자의 편에서는 솟앗다

땅속에서 스스로를 뽑아 올리는 무처럼

 

마주해 있던 편에서는 의자가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그림자의 편에서는 벽으로 끌어 올려졌다

 

벽의 편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긁혔다

얼른 감춰야 했다

 

의자는 날았다 그림자는 매달렸다 속은 알 수 없었다

 

그림자는 옆을 본 채 벽에

의자는 앞을 본 채 허공에 정지했다

 

의자와 그림자는 모양이 달랐다

의자의 다리 하나와 그림자의 다리 하나를

닿게 한 것은 벽이었다

 

의자와 그림자의 사태를 벽은 알 수 없었다

 

 


 

 

이원 시인 /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이상한 봄

 

깊은 발은 희망을 모를 테니

깊은 발은 바닥을 모를 테니

깊은 발은 실밥 푸는 곳을 모를 테니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식탁 의자에 몸 냄새가 밴

카디건을 걸쳐두었지만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다시는 환청과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림자의 무릎 뼈가 미처 펴지지 못했다 해도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이상한 봄

달아나는 발목

 

엄마 아빠

피가 흩어지는 축제

 

비명과 꽃잎과 누수를

돌멩이와 비닐봉지의 중력을

나란히 이해해

 

땅을 오래 두드린 발

열리지 않은 땅

풀들은 담장 위로 위로 솟아오른다

 

이상한 봄

춤을 추다 발목만 남았어

내용을 생각할 틈이 없었어

온몸에 죽음의 불이 붙었었거든

 

작은 점 하나가 목젖 부근에

눈물을 참으면 울퉁불퉁하다

지구에서처럼

 

홈리스는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다

새들은 허공을 깨고 간다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서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타본 적이 없어도

바다와 하늘이

바로 다음 언덕에서 만나고 있어도

사방의 벽마다 출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구겨진 틈 아니면 조롱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등 너머에서 붙잡던 목소리를

혀처럼 뽑아 쥐고 있어도

 

나는 사람이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너는 사람이다

예쁘고 연한 발목을 가졌다

 

자를 게 남았다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이원 시인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동국대학교의 문화예술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과정  마침. 1992년 《세계의 문학》가을호에 〈시간과 비닐 봉지〉 外 3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사랑은 탄생하라』가 있음. 현대시학 작품상(2002)과 2005. 제6회 현대시 작품상(2005)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