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밝은 시인 / 능소화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1. 3. 05:00

김밝은 시인 / 능소화

 

 

미풍만 불어도 간지럽다

 

기다림의 자리마다

살구나무 그늘아래 살고 있던

그리움이 건너오고

 

그대 눈빛에 주저앉은 내 심장

몸살을 하고 있다

 

염천의 허공을 배회하던 숨소리도

저마다 별이 되어 하늘로 돌아갈 때

 

꽃잠을 꿈꾸던 죄로

딩…

 

온몸 울리며

내가 눈멀어 가는 길

 

세상이 툭,

숭어리로 떨어진다

 

 


 

 

김밝은 시인 / 애월涯月을 그리다 3

 

 

애월,

감긴 눈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으며 나누었던

따뜻한 말들이 등뼈 어디쯤 박혀 있다가

울컥울컥 상처꽃으로 피어나는 시간인가 봐

 

순비기꽃빛으로 저녁을 짓던

저녁은 알아챌 수 없는 표정으로 울음의 기호들을 풀어놓았어

 

소금 기 밴 얼굴의 벽시계가 안간힘으로 낡은 초침을 돌리고

사람들 목소리 하나 앉아있지 않은 횟집,

수족관에는 생의 하루를 더 건넌 물고기의 까무룩 숨소리가

달의 눈빛을 불러들이고 있어

 

눈물로 온 생을 지새울 것만 같던 순간도 잊혀지고

단 한 번뿐일 것 같았던 마음도 희미해져 가는 거라고

 

어둠을 밀어내며, 달은 심장 가까이에서

바다의 기호들을 꺼내 가만가만

물고기의 붉은 아가미 사이로 들여보내주는지…

 

애월,

죽어서야 정갈해지는 아픈 생이 어디에나 있어

 

 


 

김밝은 시인

1963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한국방송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2013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재학중. 시집으로 『술의 미학』 『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가 있음. 제3회 시예술아카데미상, 제11회 심호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