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밝은 시인 / 능소화 외 1편
김밝은 시인 / 능소화
미풍만 불어도 간지럽다
기다림의 자리마다 살구나무 그늘아래 살고 있던 그리움이 건너오고
그대 눈빛에 주저앉은 내 심장 몸살을 하고 있다
염천의 허공을 배회하던 숨소리도 저마다 별이 되어 하늘로 돌아갈 때
꽃잠을 꿈꾸던 죄로 딩 딩 딩…
온몸 울리며 내가 눈멀어 가는 길
세상이 툭, 숭어리로 떨어진다
김밝은 시인 / 애월涯月을 그리다 3
애월, 감긴 눈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으며 나누었던 따뜻한 말들이 등뼈 어디쯤 박혀 있다가 울컥울컥 상처꽃으로 피어나는 시간인가 봐
순비기꽃빛으로 저녁을 짓던 저녁은 알아챌 수 없는 표정으로 울음의 기호들을 풀어놓았어
소금 기 밴 얼굴의 벽시계가 안간힘으로 낡은 초침을 돌리고 사람들 목소리 하나 앉아있지 않은 횟집, 수족관에는 생의 하루를 더 건넌 물고기의 까무룩 숨소리가 달의 눈빛을 불러들이고 있어
눈물로 온 생을 지새울 것만 같던 순간도 잊혀지고 단 한 번뿐일 것 같았던 마음도 희미해져 가는 거라고
어둠을 밀어내며, 달은 심장 가까이에서 바다의 기호들을 꺼내 가만가만 물고기의 붉은 아가미 사이로 들여보내주는지…
애월, 죽어서야 정갈해지는 아픈 생이 어디에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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