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례 시인 / 발자국 외 1편
최정례 시인 / 발자국
무슨 새의 발자국이 눈 위에 총총총 몇 번 찍고 사라진 흔적 앞에 휘파람새 휘파람새를 본 적도 그 소리를 들은 적도 없는데 얼떨결에 그 이름 입에 담네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 백지 한가운데 흩뜨려놓다가 한줄기 휘파람따라 사라질 것 같네
이 계곡이 숨겨놓은 눈사태보다도 털짐승의 갑작스런 출몰보다도 발밑 얼어붙은 계곡 물의 깊이가 더 무섭네
휘황찬 상점의 유리에 비쳤던 순간의 그림자처럼 무슨 짐승이 날개를 친 흔적도 없이 앞뒤없이 백지 위에 발자국만 남겼나
엄마, 위인전 읽다가 태어난 연도보다 죽은 연도를 몰라서 물음표가 되어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드는 거 같애. 예를 들어 장영실(?~?), 이걸 보면 너무 무서워 서 확 넘겨버려. 아이가 말할 때
어디선가 휘파람 한줄기 내려오면서 회오리 속으로 머리채를 잡아끄네
최정례 시인 / 게들은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갯벌에 꼬물대던 작은 게들이 갑자기 천지개벽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정지한다
나는 아무런 의도가 없어, 없어 너희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도 찜 쪄 먹을 계획도 없다구
그래도 꼬물거리던 그들은 내 기척에 기겁을 하고 눈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뻘 저 편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척 게눈을 뜨고 내 눈치를 본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그들이 내 발길을 피해 일제히 재빠르게 몸을 옮길 때 순간의 무수한 게걸음에 수평선이 빙그르 도는 것 같다
아찔하다 하늘은 뻘로 바다는 하늘로 뒤집힌다
난 바람을 쐬러 방파제에 서있고 옷자락을 펄럭일 뿐인데
섭섭하다 게들이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죽은 척 살아서 내 눈치를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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