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임 시인 / 개복숭아 외 1편
이성임 시인 / 개복숭아
계절안으로 창을 내며 또 다른 계절이 찾아왔다 청명 근처 눈을 감고 서 있다 벌린 양팔 사이 은빛 머릿결을 뽐내며 봄바람이 지나간다 몸속 단전에 땅심이 모인다 누군가 씨방 깊숙이 심어놓은 별 하나, 푸르게 한 획을 긋는다 누추한 계보를 자르고 잘라내어도 당차게 밀고 올라와 서쪽하늘로 자꾸 기어오른다 허공 저편 또 무엇을 두고 온 것일까 황도, 황소자리별이라도 물어오려는 걸까 꽃을 쥔 주먹을 펴 보면 아직은 아릿한 세 번째 춘분점 툭, 시퍼런 개복숭아 한 알이 복숭아뼈를 치며 말을 걸어온다 한 입 깨물어보니 시고 떫은 즙을 뱉어낸다
시집 『나무가 몸을 열다』 2022. 현대시학시인선
이성임 시인 / 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아,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속수무책이라는 걸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자신을 그렇게 향기로 달래고 있다는 걸 그러니, 너도 너무 애쓰지 마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너를 맡겨봐 오늘 하루가 무너져 내리는 건 내일이 차오르기 위해서라고 애써 그렇게 생각해 봐 너도 알잖니, 네가 좌측으로 기우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기울어간다는 것을 우리 모두 농담처럼 조금씩 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너도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
-시집, <나무가 몸을 열다>(현대시학사, 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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