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시인 / 번역가 외 1편
김학중 시인 / 번역가
당신의 문장은 여기에선 표현할 수 없는 문장이군요.
그 문장은 그가 내 작품의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이었다. 내 옛 주소로 보낸 그의 편지는 오랜 이웃이던 옆집 사람이 내게 다시 부쳐주지 않았다면 받아보지 못했을 편지였다.
K씨. 저는 K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대해 좀 망설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당신의 문장은 번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지금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편지와 같은 것이죠. 지금 시대에 편지라니, 라고 당신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든 좋은 번역은 착오적 시대여야 하므로 저는 앞으로 당신과 편지란 번역을 주고받고자 합니다. 야생적이고 서툰 저의 작문 때문에 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잘 도착될지 모르겠지만 이 편지를 읽게 되면 저에게 꼭 답장을 주십시오. 이 편지야말로 작품 번역의 시작이므로 우리는 이 불편함을 감내해야 합니다.
나는 그의 주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단지 밸리라고 쓰여 있어 어느 나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골짜기인 것은 분명했다. 그가 나의 작품을 어떻게 접했고 나의 옛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주소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의 계곡으로 이 편지를 받은 일과 번역에 관해 답장을 써 보냈다.
답장은 내가 그의 편지에 대해 까맣게 잊은 몇 년 뒤에야 왔다. 나는 늘 이사 중이었고 그날도 전 주소로 보내진 편지를 집배원이 챙겨서 현재의 주소로 보내주어서 받을 수 있었다.
당신에겐 이웃이 있군요. 이웃이야말로 멋진 번역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는 산들을 사이에 둔 좋은 골짜기를 가졌군요. 이런 긴장감이야말로 시적인 것이지요. 당신 나라의 어떤 시인이 그의 시의 비밀은 번역*이라고 했다던데 그야말로 놀라운 골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좁은 협곡을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이 어딘가로 건너가기 위해 태어나듯이.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편지였지만 그의 답장에는 번역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몇 년 후 완성된 번역본을 가지고 당신에게 출발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왔을 때, 나는 편지를 읽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입국한다고 알려준 날짜는 오늘이었고 나는 허둥지둥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갔지만 나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의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고 그는 공항을 빠져나간 뒤였다. 실패한 마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편함에는 그가 직접 두고 간 우편물이 있었다. 우편물 안에는 한 권의 책과 동봉된 편지가 있었다.
당신의 나라에 올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이와 같이 엇갈리는 일이라면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이 한 권의 책은 분명 좋은 번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건 누구도 자신의 번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에요. 꼭 누군가가 필요해요. 우리의 나란히. 펼쳐진 아름다운 계곡이. 그것이 설령 무한히 다른 언어라 할 지라도. 그것이 마주할 때 텍스트가 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요. 번역이란 참 놀라운 텍스트랍니다.
그가 두고 간 책을 펼쳤다.
나는 한 문장도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쓴 문장을 벗어난 문장들이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물론 그 문장들은 분명 언어였다. 언어라서 문장인 문장들은 거기 놓인 채 페이지를 흘러가듯 이어지고 있었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 그가 내게 말하고자 했던 바로 그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계곡 사이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나는, 아마 그도 그럴 것이겠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부드럽게 웃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는 계곡의 나라로 돌아갔을 것이다. 돌아가 다시 그는 한편의 산과 다른 한편의 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같이, 물이 태어나는 어딘가에서 깊어지는 말들을 매만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물가를 적시는 속삭임 속에서 또 다른 엇갈린 만남을 기다리며.
*김수영 시인의 표현을 빌려왔다.
시집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걷는사림) 수록
김학중 시인 / 암점
병상에 누운 아버지와의 대화는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다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좀 가벼워지고 있었다. 나는 낡은 그의 안경을 고쳐 씌어 주었다. 그의 시선 속에서 여기가 녹고 있었다. 아들아 나는 오늘도 기억이 깜깜하구나. 날씨는 어떠니. 나는 흘러가는 것을 모른 채 했다. 오후의 빛이 기울고 있었다. 아버지. 오늘은 강이 얼었어요. 언제 또 겨울이 왔니. 나는 춥지 않으니 걱정마라. 아버지의 기억은 여기에 없다. 기억은 이제 그 자신만이 아니라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장소에 놓여 있다. 나는 그의 기억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대신 나는 병원 오는 길에 본 언강을 생각한다. 그런데 아들아. 너는 내가 여기에 있는 줄 어떻게 알았니. 아버지 우리는 오래 같이 살지 않았어요. 그래서 찾을 수 있었답니다. 그는 여기라고 말할 줄 알았지만 여기가 어디냐는 내 질문에 여기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는 모든 곳이 여기였다. 여기 곁으로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병상 가까이에 거울이 놓여 있었다. 가까운 거울을 아버지 대신 내가 본다. 거울 속에서 아버지가 흘러가고 있었다. 어디에서 흘러 왔는지 모르는 데로 그는 아버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흘러서 어두워진다. 아버지는 그렇게 흘러와 불행했는지 모른다. 이제 아버지는 자신의 입으로 늘 말하던 불행도 잊고 어둡다고 하신다. 여기가 어둡다고 하시면 팔을 가끔 긁으신다. 여기가 좀 가렵구나. 가려운 여기가 주름이 져있었다. 거울을 두고 다음에 또 올게요 인사를 한다. 진찰실에서 만난 의사는 아버지가 그마저도 잊고 있다고 진단했지만 문병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의사가 화면에 띄운 아버지의 뇌사진을 보면서 그게 그의 여기이구나 생각했다. 그의 뇌에는 여러 갈래의 강이 있었고 오는 길의 강처럼 얼어 있는 듯 보였다. 여기는 결빙되어 어둡구나. 거기에 그가 놓여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차창 밖의 언 강을 오래 바라보았다. 군데 군데 얼면서 녹는 강의 암점이 보였다. 암점을 바라보며 나도 잠시 팔을 긁적였다. 흘러가면서 녹는 여기란 저 암점인 것이다. 잠시 깊은 점인 순간. 그때에만 잠시 장소인 여기. 잠시 안이자 바깥인 암점. 어쩌면 거기에서 나눈 대화는 한 순간도 흘러가지 않았던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조금 가려웠을지도. 어떤 불행은 간지럽다. 강의 암점에서 갈라져 나오는 선들. 언 주름들. 추위 속에서 암점의 깊이에 다가서는 힘. 거기까지가 다 암점일 것이다. 차창 밖에 걸린 암점을 오래 바라보았다. 여기에 도착해 있는 오래된 깊이. 창밖이었던 시간이 어두워지는 밖을 비추고 있어서인지 나는 같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집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걷는사림, 2022)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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