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한소운 시인 / 상강

파스칼바이런 2023. 1. 21. 05:00

한소운 시인 / 상강

 

 

천금 같은 가을볕에 앉아

만금 같은 사랑을 꺼내보네

 

푸른 피 뚝뚝 떨구었던 흔적

시들기로 작정한 풀꽃처럼

칸칸이 푸석푸석 무너지고 있네

세상무게 다 짊어졌던 그 자리

빛바랜 글자처럼 희미하게 흩어지네

 

낡은 일기장속 사진 한 장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기와 눈맞춤하네

새순 터지는 꽃잎의 옹알이 같은

오~ 우~ 한 음절씩 터져 나오는 소리

조가비만한 꼭 쥔 주먹을

내 입속에 넣어주며 까르륵 웃는 소리

내가 그만 아득해지네

희뿌연 사진의 검은 눈망울, 흑백의 하루하루가

내 얼굴의 빛과 그림자로 얼룩지는

 

창가엔 단풍 빛 울긋불긋

 

상강의 눈빛시린 하루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1월호 발표

 

 


 

한소운 시인

1960년 경주 건천 출생. 1998년 《예술세계》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그 길 위에 서면』, 『아직도 그대의 부재가 궁금하다』, 『꿈꾸는 비단길』 그리고 예술기행집 『황홀한 명작여행』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