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원희 시인 / 봄날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1. 24. 05:00

김원희 시인 / 봄날

 

 

문방구 앞 빨간 우체통 추억처럼 서 있다

 

어릴 적 펜팔친구

꽃 편지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끝에는

우리 우정 변치말자 했던가

우체통에 20원짜리 우표 붙인 편지

하루빨리 전달되기를 바라며 손끝 떨렸었지

 

기다림 한 주 만에 온 답장에는

곱게 말린 네잎 클로버에 명함사진 한 장

부푼 설렘 동봉

‘방학 때 만나자! 놀러와’

 

주소보고 지도로만 수백 번 갔었다

 

세월 지나 모두 잊었나 했는데

고스란히 추억을 상기시켜준 빨간 우체통

지나가던 몇몇 여학생들의 재잘거림

 

거기에 문득

내 소녀 적 친구들 웃음소리

섞여 들려오는,

 

목련꽃 화사한 4월에

 

 


 

 

김원희 시인 / 폭우

 

 

여름 내내 비가 내렸다

지상을 점령했던 비장군이 저지른 만행

할퀴고 무너뜨리고 인명까지

무참히 짓밟고 갔다

 

폭우에 연이은 재해

하늘에서 주관하는 일

사람이 관여할 수 없나보다

 

인생의 짐 또한 각자의 몫

원치 않아도 살아내야 하는

폭우에 삶을 유린당해도 어쩔 수 없이

지상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몫이다

 

 


 

김원희 시인

숭의여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1998년 《불교문예》로 희곡, 2012년 《계간》 창작21 시부문 수상으로 등단. 현재 창작21 작가회 회원. 서대문문협 회원. 저서로는 시집 《햇살 다비》,  공저《야단법석》1권 2권, 《몇 생이 흘렀을까》등이 있다. 현재 계간《불교문예》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