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권기만 시인 / 직립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5. 05:00

권기만 시인 / 직립

 

 

불안은 바로 설 수 없음에서 생겼다

어깨에 힘주는 버릇과

꼬리를 주고 얻은 약간의 높이

 

일어섰다고 하지만 그건

네 발인 걸 잊고 있는 동안의 고립

 

수직이라는 굴레에 갇힌 후

더 이상 클 수 없음에서 어리둥절할 때

수평을 삼킨 고양이의 걸음이 부러웠다

 

인간 이전의 자세를 닮아 가는

허리 굽은 노인들

허리가 자꾸 주저앉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밤이 되면

얌전하게 수평에 입 맞추는 사람들

알고 보면 네 발 짐승이다

 

 


 

 

권기만 시인 / 내 안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모래가 물이다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는 모래는

지불할 게 남아 있지 않은 고통에 닿아야 생기는 부력

 

혼자를 수없이 횡단해 본 자에게

한 걸음은 소금 한 됫박보다 값지다

멈춰 있으면서 흐를 수 있는 경지는

자신을 수없이 허물어야 도달하는 자리

 

허문자의 고요로 상처를 지우고

흐르면서 흘렀던 것마저 지우는

사막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소진하는 것

 

모래는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첫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되는 타클라마칸에서

길을 찾는 건 끝끝내 헛수고다

 

* 타클라마칸: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

 

 


 

권기만 시인

1959년 경북 봉화에서 출생. 2005 문학저널 신인상 당선, 2012년 계간 《시산맥》 등단. 제4회 월명문학상, 제7회 최치원 신인문학상, 울산문학상 수상. 시집 『발 달린 벌』.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