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만 시인 / 직립 외 1편
권기만 시인 / 직립
불안은 바로 설 수 없음에서 생겼다 어깨에 힘주는 버릇과 꼬리를 주고 얻은 약간의 높이
일어섰다고 하지만 그건 네 발인 걸 잊고 있는 동안의 고립
수직이라는 굴레에 갇힌 후 더 이상 클 수 없음에서 어리둥절할 때 수평을 삼킨 고양이의 걸음이 부러웠다
인간 이전의 자세를 닮아 가는 허리 굽은 노인들 허리가 자꾸 주저앉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밤이 되면 얌전하게 수평에 입 맞추는 사람들 알고 보면 네 발 짐승이다
권기만 시인 / 내 안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모래가 물이다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는 모래는 지불할 게 남아 있지 않은 고통에 닿아야 생기는 부력
혼자를 수없이 횡단해 본 자에게 한 걸음은 소금 한 됫박보다 값지다 멈춰 있으면서 흐를 수 있는 경지는 자신을 수없이 허물어야 도달하는 자리
허문자의 고요로 상처를 지우고 흐르면서 흘렀던 것마저 지우는 사막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소진하는 것
모래는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첫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되는 타클라마칸에서 길을 찾는 건 끝끝내 헛수고다
* 타클라마칸: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