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수 시인 / 간이역 외 2편
한영수 시인 / 간이역
여행길에 오르던 그날의 추억속
어느 간이역 대합실 창문 밖 풍경을 그려본다.
가득한 보랏빛 꽃들 여러 갈래로 뻗은 철길
무언가를 알리는 시그널의 불빛들
떠나는 열차을아쉬워하는 경적의 여운속 순간
어디선가 내게 다가오는 발 걸음이 ...
한영수 시인 / 책에게 구걸하다
지하도 입구 걸인이 책을 읽는다 모자를 벗어 뒤집어놓고
점점 코를 박는다 책이 되어 책에게 구걸하고 앉았다
책은 뒤통수가 커다랗고 가리키는 것이 많고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해진 외투자락 모래 한 알에서 간밤의 사하라를 읽는다* 다음 문장은 무엇입니까?
행인1 걸음이 느려진다 동전 몇 개 모자 속에 떨어진다 행인 2 돌아본다
금방 지하에서 나왔는가 들어가기 직전인가 비명인가 가라앉는 돌덩이인가
눈으로는 읽을 수 없다 중간만 남아 실금이 많은 책은
손으로 두드려서 귀로 들을 수 있고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한영수 시인 / 다금바리
한 마리 잡아 올리면 표정이 풀린다 두 마리 끌어올리면 인생은 네 박자~ 십팔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어망을 푼 아내가 웃고 김 씨가 따라 웃는다 이만하면 일당은 했네, 라면에 식은밥을 말다가 작은 놈으로 우럭 정도야 회쳐 아 내 입에도 넣어 주고 제 입에도 넣는
말하자면 다금바리는 천 번을 기운 그물코다 천 번의 바느질 자국이다 김씨가 먹어 보지 못한 것, 바다에 미쳐 공부는 점점 싫어 바다에서 나이를 먹은 김 씨가 사십 년 배를 타면서도 그 속을 모르는 속, 어둡기 전에 거둬 올려야 하는 매일의 어망이다 조수 일을 대신하는 아내의 큰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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