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석미화 시인 / 나의 호스피스 애인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12. 05:00

석미화 시인 / 나의 호스피스 애인

언제까지든 할 수 있을까, 알고는 못 가는 생이야

어젯밤 너는

떠내려오는 흰 뼈를 보았다고 했어

강 가득 무언가 차오르고 산이 되고 바다가 되어 있었어

어제의 꿈이었는데

나의 꿈속이기도 했을까

서로의 마음은 깊었고

비애의 무덤 붉은 잎사귀의 무덤 총총 나비의 무덤이었나

하루를 살면 다 잊더라

매일의 죽음이 나를 깨끗하게 해주더라

너는 그게 은총이라고 했다

은총, 하고 말하면

냉정함이 은총이었다고 말하는

나의 호스피스 애인아

사랑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고

그때마다 냉정함이 살아났다는

울고 있는 사람의 등을 쓸어 주고 나서면

슬픔도 잊은 채 죽음도 곧 벗은 채

헨델의 할렐루야를 치는

사랑아 사랑아 부르는

음표들

손가락이 건반을 저절로

오가는

모현 어디서든

소읍 어느 미루나무 아래서든

흰 피아노를 두고 사는

알고는 못 가는 애인아

봄날 연두에게 가듯

보석을 다 팔아

그 먼 언덕에 한번 다녀올까


 

석미화 시인 / 몽환의 서

 나비 날개편이 내 거처의 마지막이라면 어떨까 내가 사는 섬이 바다 위에 잠자는 나비 모습이라고 누가 일러주면 어땠을까 양 날개가 펼쳐져 있고 그 사이 몸통이 가만히 숨죽이면

 위쪽 아래쪽 두 허공이 여울지는 만(灣)의 넓이를 비자 잎 더듬이로 불러들이고 있는

 한 잠 후 나는 오른쪽 날개 아래 물결 튄 물방울 섬에 살고 있는 것이다 펴진 날개 사이에 두 편의 꿈이 찰랑이면 내 귀는 바다를 베고 일출과 일몰 쪽으로 조금씩 들다가 물결에 부셔 겹눈이 되는 것이다

 바람이 불고

 아홉 구름 속에 나비를 불러 잠시 생각을 잠재우면 눈시울에 젖어 빠져나오는 수천의 파랑물결나비

 마음이 몸서리치다가 내가 마지막 옮겨 앉은 남해, 나비가 막 깨어나 날개를 쳐올리는 물때라면 나는 좋았을까 바닷물에 눈을 담그면 세상 저곳 어머니는 섬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고 두편의 꿈을 서로 이어 주는 한 바다의 섬, 여기 또 잠시 머물러 있었을까

『문장 웹진 2022. 10』

 

 


 

석미화 시인

1969년 경북 성주에서 출생. 2010년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졸업. 201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4년《시인수첩》 신인상 당선. 2019년 ‘아르코 창작기금’을 수혜. 시집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