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수 시인(화천) / 훨, 훨 외 1편
한길수 시인(화천) / 훨, 훨
햇살이 새털처럼 가벼워서 구름을 향했던 나무에 햇살을 칠해 주면 나무는 새털처럼 날아갈 수 있을까
허공을 버린 그루터기 하나 주워다가 껍질을 벗겨내며 자연에 순응한 이 평온을 들여다보면 내가 날아가는 듯 들뜬 기분이야 나무의 꿈도 새가 되는 것 비틀리고 거친 옹이를 다듬어내자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을 새의 형상이 자세를 잡지 허공이 쉼터였을 가지런한 안식 그 소박한 형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일은 나이테의 행간을 읽어내는 일 날갯짓이 파닥거릴 때까지 나무의 꿈을 조각 해 나무가 끝내 정복하지 못한 그 어디쯤을 향한 그리움은 옹이가 되었고 둥지를 고심한 흔적은 아늑하기를 바랐지만 매끈이 되었어 옹이 진 마음을 깎아 만든 솟대에 새털구름을 빠져나온 햇살이 비추자 나무의 꿈이 마당을 휘돌아 산을 넘어
나무의 꿈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새털구름을 입고 세상을 날거야 내 꿈을 찾아 훨, 훨.
한길수 시인(화천) / 부부
언덕 위에 작은집 마련해서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담을 쌓네 기초석은 미약하고 서툴러도 돌과 돌 사이 틈은 제법 촘촘해서 빗물이 제 몸에 흙을 말아 빠져나가도 돌멩이가 구르는 일은 없었네 어쩌다 삶의 틈이 생기면 다른 경사면에 기대고 싶어 잠시 굴러떨어지기도 했었네 그럴 때마다 찰진 내력으로 치대며 틈을 메워 바람이 제 몸에 흙을 실어 날려도 담벼락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네 울퉁불퉁 평생을 쌓아가는 동안 돌꽃으로 피어난 삶의 검버섯 저녁이 제 몸을 넓게 펴서 얇은 햇살을 거두어가도 돌담에 남아 있는 온기는 거두지 못하네 언덕 위 낡은 집은 기울어졌지만 돌담에 쌓인 금슬은 허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네
- 계간 《시사사≫ 2022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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