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한길수 시인(화천) / 훨, 훨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13. 05:00

한길수 시인(화천) / 훨, 훨

 

 

햇살이 새털처럼 가벼워서

구름을 향했던 나무에 햇살을 칠해 주면

나무는 새털처럼 날아갈 수 있을까

 

허공을 버린 그루터기 하나 주워다가

껍질을 벗겨내며

자연에 순응한 이 평온을 들여다보면

내가 날아가는 듯 들뜬 기분이야

나무의 꿈도 새가 되는 것

비틀리고 거친 옹이를 다듬어내자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을 새의 형상이 자세를 잡지

허공이 쉼터였을 가지런한 안식

그 소박한 형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일은

나이테의 행간을 읽어내는 일

날갯짓이 파닥거릴 때까지

나무의 꿈을 조각 해

나무가 끝내 정복하지 못한

그 어디쯤을 향한 그리움은 옹이가 되었고

둥지를 고심한 흔적은 아늑하기를 바랐지만

매끈이 되었어

옹이 진 마음을 깎아 만든 솟대에

새털구름을 빠져나온 햇살이 비추자

나무의 꿈이 마당을 휘돌아 산을 넘어

 

나무의 꿈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새털구름을 입고 세상을 날거야

내 꿈을 찾아

훨, 훨.

 

 


 

 

한길수 시인(화천) / 부부

 

 

언덕 위에 작은집 마련해서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담을 쌓네

기초석은 미약하고 서툴러도

돌과 돌 사이 틈은 제법 촘촘해서

빗물이 제 몸에 흙을 말아 빠져나가도

돌멩이가 구르는 일은 없었네

어쩌다 삶의 틈이 생기면

다른 경사면에 기대고 싶어 잠시

굴러떨어지기도 했었네

그럴 때마다 찰진 내력으로 치대며 틈을 메워

바람이 제 몸에 흙을 실어 날려도

담벼락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네

울퉁불퉁 평생을 쌓아가는 동안

돌꽃으로 피어난 삶의 검버섯

저녁이 제 몸을 넓게 펴서 얇은 햇살을 거두어가도

돌담에 남아 있는 온기는 거두지 못하네

언덕 위 낡은 집은 기울어졌지만

돌담에 쌓인 금슬은

허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네

 

- 계간 《시사사≫ 2022년 여름호에서-

 

 


 

한길수 시인(화천)

1963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졸업. 2015년 《시사사》 하반기 신인추천작품상으로 등단. 시집 <고립낙원> 시산문집 『살둔마을에 꽃이 피고 시가 되고』. 현재 (주)루카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