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우희숙 시인 / 달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17. 05:00

우희숙 시인 / 달

 

 

누군가 플러그를 꽂는다

커다란 거울이 환히 켜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꽃향기와 물소리

숨죽이는 소리

야생고양이 수염이 그 안에서 자란다

접촉 불량인지 거울은 수시로 깨지고

보였던 것들은

깨지거나 갈라지거나 사라진다

정전이다

거울이 사라지고

세상은 텅 비었다

플러그를 끼울 누구도

거울이 살아 돌아 올 시간도 알려주지 않는다

달은 거울이다.

 

 


 

 

우희숙 시인 / 환시

 

 

거실 불빛은 포크레인을 움직여

창을 팠다

멀리 뚫었다

 

수심 깊은 바다

거친 파도의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 떼가 보인다

청보리멸들이 지느러미를 낙하선처럼 펴고

풍랑을 타고 빠르게 내려온다

적군이 있는지도 모른 채

바닥 틈새로 쏜살같이 착지한다

 

배고픈 길고양이들

내려오는 물고기를 앞발로 채 먹는다

뼈조차 남지 않고

진눈개비가 날린다

 

 


 

우희숙 시인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0년《문학.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도시의 쥐』(문학.선, 2012)가 있음. 현재 계간 『문학.선』주간, 삼성서울병원 병리검사실장.